미국 저널리스트가 쓴 책…”유약한” 미국 눈송이 세대를 바라보는 다른 시선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유사 이래로 기성세대는 청년층에 대해 장탄식하곤 했다. 2천여년 전 그리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도 그랬다. 그는 젊은이들을 두고 “무슨 일이든 지나치게 하는” 경향이 있고, 자기가 뭐든 다 안다고 생각하고, 주로 “강한 열정”과 세상에 대한 “기고만장한 생각”을 따른다고 탄식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유지를 받드는 기성세대는 현재도 존재한다. 미국에서 기성세대는 젊은이들을 ‘눈송이'(Snowflake)라고 부른다. 말 그대로 “눈송이처럼 나약하다”는 일종의 멸칭이다. 좀 더 부연하자면 “아동기의 애정 과다로 손쓸 수 없게 망가진 데다, 보건·안전 규정에 가로막혀 단단해질 기회를 얻지 못한, 현실 세계를 감당하지 못하는 징징대는 응석받이에 자기도취적인 젊은이”를 뜻한다.
미국 일간 워싱턴포스트에서 주로 대중문화와 정치 분야를 다루는 비디오저널리스트인 해나 주얼은 신간 ‘꼰대들은 우리를 눈송이라고 부른다’에서 이런 기성세대의 세대론이 애초 극우 인터넷 밀실에서 나온 혐오에 기대고 있다고 지적한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나약하다’는 의미에서 파생된 눈송이가 구체적 현실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철회를 외치는 대학생과 유색인, 여성, 성소수자 등을 지칭하는 의미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나아가 진보 엘리트주의자, 기업인 등도 젊은 세대가 주어진 노동 조건에 감사할 줄 모르고, 불평만 한다며 눈송이란 멸칭을 버젓이 사용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저자는 인권을 무시하고, 편견에 휩싸인 기성세대가 되느니 ‘눈송이’로 불리는 게 낫다고 주장한다.
“나는 인종주의자, 편견 덩어리, 동성애 혐오자, 옅어지는 제 존재감을 되돌려 보려고 헛되이 발버둥 치는 옹졸하고 복수심에 불타는 잔인한 사람이기보다는, 차라리 지나치게 예민한 사람이고 싶다고. 눈송이는 최악의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당신이 신념이 있고 연민 어린 사람이라는 증거일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젊은 세대의 경망함을 탓했지만, 적어도 그들의 ‘도덕적 선량함’에서 오는 고상함은 주목했다. 그다지 품이 넓지 못한 오늘날의 평론가들은 “젊은이들의 열정에 깃든 고상함을 보지 못한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뿌리와이파리. 이지원 옮김.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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