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은 징역 4만년도 선고하는데…우리나라 판사 형량은 왜 낮을까

정재민 변호사 “AI 도움 없이 수동으로 재판하는 판사 꺼릴지도”

범죄는 줄지만 불안은 증폭하는…신간 ‘범죄사회’

형기 마치고 출소한 조두순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사회적 강력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통계만 보면 대한민국은 더 안전해지고 있다.

법무연수원의 ‘2022범죄백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2012~2021) 우리나라 전체 범죄 건수는 193만 건에서 153만 건으로 20.8% 감소했다.

살인은 32.3% 줄었고, 폭력은 29.6%, 절도는 42.7% 감소했다.

절대적인 범죄 건수가 줄고 있음에도 시민들의 불안이 누그러진 건 아니다.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얼까. 판사 출신인 정재민 변호사는 신간 ‘범죄사회’에서 “최근 급증하는 범죄가 시간, 장소, 대상자를 가리지 않는 무차별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서현역 묻지마 흉기 난동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정 변호사에 따르면 범죄는 더 잔인해지고, 더 은밀해지며 또한 역설적으로 무차별적으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한 칼부림 사건이 대낮에 버젓이 거리에서 자행되고, ‘묻지마 흉기’ 난동 예고 글도 심심치 않게 인터넷에 나돈다.

엄습하는 불안에 시민 상당수는 처벌이라도 강력히 하라고 요구하지만, 판결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동을 잔인하게 성폭행한 조두순 사건을 토대로 영화 ‘소원’이 만들어지고, ‘국민사형투표’ 등 사법부 판결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나오는 등 이른바 솜방망이 판결을 비판하는 콘텐츠들이 계속 제작되는 이유다.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 희생자 추모
[EPA=연합뉴스]

다른 나라로 눈을 돌리면 국내 솜방망이 처벌과 대비된다. 미국에선 100년이 넘는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 스페인 법원은 192명이 사망한 2004년 마드리드 열차 폭탄테러사건 주범 3명에 대해 각각 징역 4만2천924년, 4만2천922년, 3만4천715년을 선고한 바 있다.

미국보다 형량이 상대적으로 낮으니 피고인이 국내에서 재판받으려 ‘노력’하는 촌극도 빚어진다. 아동 성 착취물 공유 사이트 ‘웰컴투비디오’ 운영자 손정우 사건이 대표적이다.

손씨는 2015∼2018년 특수 브라우저로 접속할 수 있는 다크웹에 ‘웰컴투비디오’ 사이트를 만들어 성 착취물을 거래한 혐의로 징역 1년 6개월을 확정받아 복역하고 출소한 바 있다.

그는 관련 혐의로 미국에서도 기소됐으나 한국 법원이 2020년 범죄인 인도 청구를 기각해 미국 송환을 면했다. 손씨 아버지는 아들이 미국에 송환되는 것을 막으려 한국에서 입건 중인 상태로 만들기 위해 범죄수익은닉 혐의로 아들을 직접 고소하기도 했다.

정 변호사는 영상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에 대한 유괴, 납치, 인신매매가 벌어진 점까지 감안한다면 “징역 10년이 나와도 과하다고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드라마 ‘국민사형투표’
[SBS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그렇다면 국내에선 판사의 형량이 왜 낮을까.

정 변호사는 판사가 장기간 재판을 하면서 피고인의 나쁜 측면뿐 아니라 그간에 살아온 과정이나 가정형편 등 여러 가지 측면을 종합적으로 보게 되는 점, 그 과정에서 피고인에게 연민의 감정이 들 수도 있는 점을 원인으로 든다.

아울러 기존 판결의 관성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점도 꼽는다. 선례를 벗어나면 상급심에서 판결이 취소되는 확률이 높은데, 판사들이 통상 이를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 변호사는 양형기준표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를 위해선 개별 형벌 조항에 있는 ‘법정형’ 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주거침입죄를 예로 들면서 “마을 공동체 안에서 서로 이웃집을 자유롭게 왕래하던 시절에 정해진 형량이 70년이 지난 지금 프라이버시에 대한 인식이 강화된 이 시대에도 그대로 유지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1953년 정해진 주거침입죄 형량은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이다.

여성 집에 침입해 성폭행 시도…30대 구속심사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처럼 형량에 대한 볼멘소리가 적지 않은 가운데 정 변호사는 책에서 인공지능(AI)이 활용될 가능성도 살펴본다. 그는 인공지능 판사는 형량을 결정하는 데 있어 전관예우, 출신, 나이, 경제력, 개인적 사연, 정치적 성향 등에 따른 편견을 바탕으로 재판했다는 의심을 받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한다.

“언젠가 사람들이 인공지능의 도움 없이 혼자서 수동으로만 재판하는 판사에게 재판받는 것을 꺼리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창비. 300쪽.

buff27@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