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아이유’ 비비, 진짜 아이유도 제친 돌풍 비결은

장기하표 가사에 쉬운 멜로디 통했다…’AI 커버’로 2차 창작 열기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가수 비비의 신곡 ‘밤양갱’이 각종 음원 차트 1위를 휩쓸며 치열한 연초 가요계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특히 ‘어둠의 아이유’라는 별명도 가진 그가 ‘진짜 아이유’의 신곡까지 제치며 정상에 오른 것을 두고 가요계에서는 장기하표 재치 넘치는 가사에 쉬운 멜로디가 이변을 일으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가수 비비
[필굿뮤직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한번 들으면 잊히지 않는 ‘밤양갱’ 돌풍

1일 가요계에 따르면 ‘밤양갱’은 멜론은 물론, 지니·유튜브뮤직·플로·바이브·벅스 등 국내 주요 음원 사이트의 일간·실시간 차트 1위를 휩쓸었다.

‘밤양갱’은 비비가 지난해 8월 ‘홍대 알앤비(R&B)’ 이후 6개월 만에 내놓은 신보로, 지난 사랑의 소박하면서도 아름다운 기억을 ‘밤양갱’에 비유한 곡이다.

이 노래는 장기하가 작사, 작곡, 편곡한 곡으로, 듣기 편한 왈츠풍 멜로디에 비비의 매력적인 보컬이 더해지며 묘한 중독성을 불러일으킨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장기하식 스토리텔링의 힘이 10대와 20대에 강력하게 어필하고 있다”며 “부드러운 느낌의 8분의 6박자 왈츠풍의 노래에 비비의 안정된 가창력이 더해져 매력적으로 다가갔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특히 ‘달디달고 달디달고 달디단 밤양갱 밤양갱’ 하는 장기하 특유의 뇌리에 남는 가사는 달콤하면서 쌉쌀한 사랑의 뒷맛을 압축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비비는 앞서 한 유튜브 채널에 출연해 ‘밤양갱’이 2018년 발매된 장기하와얼굴들의 ‘나란히 나란히’의 답가라고 밝힌 바 있다. ‘나란히 나란히’는 ‘이미 너는 떠나가고 없었어…나란히 나란히 걸어 다닐 걸 그랬어’ 하는 가사가 인상적인 이별송이다.

김 평론가는 “‘밤양갱’이라는 상징적인 단어를 통해 일상에 일어날 법한 일을 구어체로 소소하게 표현을 잘했다”며 “압축적인 소재와 문장으로 여러 상황을 (가사로) 넣는 것은 장기하가 가진 큰 장점”이라고 덧붙였다.

비비는 2019년 싱글 ‘비누’로 데뷔해 작사·작곡을 직접 해내며 싱어송라이터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는 2021년 영화 ‘여고괴담 여섯번째 이야기 : 모교’에 출연하며 배우로도 활동해왔다.

비비는 미니음반 ‘인생은 나쁜X’나 정규음반 ‘로우라이프 프린세스 : 누아르'(Lowlife Princess: Noir) 등으로 유독 어둡고 거친 매력을 자주 보여왔는데, 가수 겸 배우로 활약하는 점과 오버랩되며 ‘어둠의 아이유’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밤양갱’의 다양한 AI 커버 영상들
[유튜브 캡처.재판매 및 DB 금지]

◇ 아이유·박명수가 ‘밤양갱’을?…’AI 커버’ 놀이로 확산

‘밤양갱’의 흥행에는 노래 자체의 힘에 더해 유튜브 등에서 확산한 이른바 ‘AI(인공지능) 커버’ 열풍도 거들었다.

‘AI 커버’란 가수의 목소리를 AI에게 학습시킨 뒤, 이를 통해 마치 해당 가수가 노래를 커버한 것처럼 생성한 영상 콘텐츠다.

현재 유튜브에는 ‘밤양갱’의 오혁(24만뷰), 아이유(23만뷰), 박명수(15만뷰), 백예린(10만뷰) AI 커버 영상이 각각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인기를 끌고 있다.

물론 이들 가수는 실제로 이 노래를 부르지는 않았다.

가요계에서는 ‘밤양갱’이 8분의 6박자 왈츠풍으로 멜로디가 쉬운 덕에 ‘AI 커버’ 같은 2차 가공의 좋은 소재가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10·20대가 적극적으로 이 노래를 활용해 또 다른 콘텐츠를 생산하는 것이 마치 ‘놀이’처럼 번져나가면서 ‘밤양갱’의 히트를 부채질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 유명 스타들이 ‘밤양갱’ 챌린지에 참여한 것에 더해 비비 본인도 각종 음악 프로그램과 유튜브 예능 등에 활발하게 출연한 점도 도움이 됐다.

비비의 소속사 필굿뮤직은 “발매 뒤 ‘밤양갱’에 대한 입소문에 가속이 붙었다”며 “이효리와 (여자)아이들의 소연 같은 아티스트도 다양한 ‘밤양갱’ 챌린지에 적극 동참했다. 비비도 예능 등으로 분위기를 더욱 가열시켰다”고 설명했다.

아이유
[연합뉴스 자료 사진] 2023.4.17 scape@yna.co.kr

◇ 선공개곡 흥행에도…상대적으로 아쉬운 ‘진짜 아이유’

지난 20일 새 미니음반 ‘더 위닝'(The Winning)을 발표한 ‘진짜 아이유’는 선공개곡 ‘러브 윈스 올'(Love wins all)로 멜론 기준 한 달 내내 일간 차트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사랑을 받았다.

신보 더블 타이틀곡 ‘쇼퍼'(Shopper)와 ‘홀씨’ 역시 차트 상위권을 지키며 대중의 선택을 받았다.

하지만 과거 내놓는 노래마다 줄줄이 히트시킨 그이기에 앨범의 반향은 선공개곡과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아쉬운 성적표다.

이를 두고는 앨범 발매 약 한 달 전에 나온 선공개곡 ‘러브 윈스 올’이 사실상 타이틀 싱글의 역할을 했다거나, 다음 달 서울 올림픽공원 KSPO돔(체조경기장)에서 열리는 콘서트 준비에 매진 중인 아이유가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는 등 활동이 적었던 점이 영향을 끼쳤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아이유는 지난 2021년 정규 5집 ‘라일락'(LILAC) 때는 각종 음악 프로그램에 출연해 팬들을 반갑게 한 바 있다.

다양한 장르로 ’30대 아티스트’로서의 진솔한 생각을 담아낸 이번 음반이 대중에게 다소 어렵게 다가갔을 수도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음원 차트 관계자는 “아이유의 ‘더 위닝’은 그야말로 아티스트의 작가적 정신으로 만든 작품으로, 전작들과는 느낌이 많이 다른 것 같다”며 “그래서 대중의 귀에 딱 꽂히는 노래는 아닐 수 있다”고 짚었다.

정민재 대중음악평론가는 “신보의 멜로디를 살펴봤을 때 예전 곡과 비교해 귀에 감기는 곡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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