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스테르담대 교수가 펴낸 신간 ‘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유럽에서 시리아 난민 유입으로 위기가 고조되던 때가 있었다. 2015년부터 시리아 난민과 보트에 몸을 싣고 지중해를 건너는 이주자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당시 영국 정치인들은 해안 상륙을 엄격히 단속하겠다고 나섰지만 소용없었다. 이는 2016년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를 표결하는 주요 요인이 됐다.
미국에서는 9·11 테러로 국경 통제 추세가 굳어졌고 정치인들은 이주민을 국가 안보의 잠재적 위협으로 여겼다. 트럼프는 이민 반대 공약으로 2016년 대선에서 승리하기도 했다.
이주와 불법입국, 난민은 세계적인 문제다. 이 이슈는 늘 ‘찬반’ 또는 ‘선과 악’의 틀에서 양극단으로 치달았다.
이주민들이 일자리를 빼앗고 범죄율을 높일 것이니 ‘국경을 통제해야 한다’는 반대파와 노동력 부족과 인구 노령화 등 시급한 문제를 해결해줄 열쇠이니 ‘활짝 열어야 한다’는 찬성파로 대치했다.
최근 출간된 ‘이주, 국가를 선택하는 사람들’은 국제 이주의 실상을 낱낱이 파헤치며 이를 둘러싼 22가지 오해에 반박한 책이다.
암스테르담대 사회지리학과 교수이자 옥스퍼드대 국제이주연구소 창립 멤버인 저자가 30여년간 전 세계를 다니며 연구한 결과를 바탕으로 펴냈다.
저자는 ‘이주가 사상 최대치’로 극적 국면에 도달했다는 주장에 대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해왔다”고 반박한다.
그에 따르면 1960년 전 세계 국제 이주자는 대략 9천300만명이었다. 2000년 1억7천만명, 2017년 2억4천700만명으로 증가했다. 얼핏 엄청난 증가로 보이지만, 국제 이주자 수를 세계 인구 대비 비율로 따지면 이주자 비율은 대략 3% 수준을 유지해왔다.
이주민 때문에 범죄가 급증해 사회 안전이 위협받는다는 뿌리 깊은 두려움에 관해서도 저자는 “근거가 희박한 오해”라고 지적한다.
그는 미국과 유럽 지역 연구 결과를 근거로 이주가 공동체의 사회적 통제 역량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며 범죄율을 줄인다고 주장한다. 또한 이주민들은 영주권과 시민권을 취득하고 정착하길 원해 범죄에 가담하는 비율도 낮다고 말한다.
또한 이주민들이 일자리를 훔치고 임금을 낮춘다는 인식도 실상과 다르다고 지적한다. 이주민은 노동력이 부족한 일자리를 메우는 것이며, 특정 분야에 집중되는 경우가 많아 토박이 노동자와 같은 일자리를 두고 경쟁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국경을 제한하면 이주민이 감소한다는 논리도 효과가 없다고 저자는 본다. 이동을 차단했지만 미국 내 라틴아메리카와 카리브해 출신 이주민 인구는 1970년 310만명에서 2017년 2천540만명으로 증가했다. 영국 등 서유럽에 사는 비유럽 출신 이주민 인구도 이 기간 150만명에서 540만명으로 늘었다. 그는 “물침대 효과” 때문이라며 “이주민들이 이주 계획을 취소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경로를 찾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와 달리 이주민에 찬성하는 쪽에서 제시하는 ‘이주민이 모든 경제 문제를 해결할 것’이란 기대에도 선을 긋는다.
그런 영향을 미치기엔 이주자의 규모가 작다. 또한 이주민으로부터 얻는 혜택은 대부분 기업과 기존 부유층의 몫이다. 저자는 “일반 시민들이 ‘우리에겐 뭐가 이익이지?’라고 묻는 것도 당연한 일”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이주민은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광범위한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변화 과정에 내재하는 일부”여서 찬반이 아닌 “어떻게”의 문제라고 거듭 강조한다.
출산율이 세계 최저인 한국 사회에서도 고령화와 저출산 문제를 극복할 대안으로 이주 문제가 거론되고 있다. 이민청 설립도 논의된다. 2022년 기준 한국 이주민 인구는 180만명으로 급증했다.
저자는 한국 독자들에게 “이 책이 한국 사회와 정계에서 이입과 관련해 수준 높은 논의를 촉구하고 미래의 이주 추세와 관련해 더 현실적인 아이디어를 개발하는 촉매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세종서적. 김희주 옮김. 5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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