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다 부문 수상작인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천재과학자 로버트 오펜하이머(1904∼1967)의 삶을 그린 전기 영화다.
크리스토퍼 놀런 감독이 연출한 ‘오펜하이머’는 10일(현지시간)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최고상인 작품상을 포함해 7관왕을 차지했다.
오펜하이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핵무기 개발을 위한 맨해튼 프로젝트를 주도한 물리학자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미국 뉴멕시코주 로스앨러모스에 지어진 거대한 연구단지에서 진행됐다. 이곳에 모인 뛰어난 과학자들의 연구를 오펜하이머가 이끌었다.
이들은 1945년 핵폭발 시험에 성공했고, 미국이 개발한 원자폭탄은 일본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돼 종전을 앞당겼다.
‘오펜하이머’가 최고상인 작품상을 받은 건 역사적 사실에 기반을 둔 영화에 우호적인 아카데미의 경향을 재확인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오펜하이머’는 맨해튼 프로젝트를 이끈 오펜하이머의 천재성과 리더십을 조명한다. 2차 세계대전에서 파시즘에 승리를 내줘선 안 된다는 역사적 성찰을 하는 지성인의 면모도 놓치지 않는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로스앨러모스의 핵실험 장면이다. 밤하늘에 거대한 버섯 모양의 불기둥이 솟아오르는 장대한 스펙터클을 보여준다. 제작진은 컴퓨터그래픽(CG)을 쓰지 않고 이 장면을 완성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의 인간적 고뇌에도 주목한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참상을 본 오펜하이머는 깊은 고민에 빠진다. “나는 이제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됐다”는 그의 독백이 이를 집약적으로 표현한다.
오펜하이머는 미국의 수소폭탄 개발에 부정적인 입장으로 돌아서고, 매카시즘의 광풍이 불던 1950년대엔 소련의 스파이란 의혹에 휘말리면서 정치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는다.
오펜하이머를 연기한 배우 킬리언 머피는 실존 인물인 오펜하이머의 사소한 행동거지 하나까지 사실적으로 구현해냈고, 그의 천재성과 인간적 고뇌도 스크린에 생생하게 그려냈다.
머피는 이날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품에 안았다. 1996년 데뷔 이후 처음으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그는 단번에 수상까지 하는 영광을 안았다.
‘오펜하이머’에서 오펜하이머를 몰락시키는 인물이 스트로스 제독이다.
스트로스 역의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는 공명심과 시기심에 빠져 일그러진 인물을 연기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는 이번 시상식에서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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