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등행렬서 ‘주목’ 한마음선원 장엄등 제작현장 공개…”수행 삼는다”
공들여 만들고 행렬 끝나면 해체…”때 되면 내려놓는 것 배워”
연등행렬 앞두고 장엄등 제작 현장 공개[http://yna.kr/AKR20240413028800005]
(안양=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등불사(燈佛事) 하는 사람도 번뇌를 녹여 마음 그릇이 넓어지고, 보는 사람도 에너지를 받아 마음이 밝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채색 담당 전혜성)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연등 행렬을 한 달 남짓 앞둔 2일 오후 경기 안양시 소재 한마음선원 불교문화회관에서 장엄등(莊嚴燈) 채색 작업이 한창이었다.
장엄등은 부처에게 올리기 위해 장식한 등으로 용, 거북선, 부처 등 불교의 여러 상징물 형상으로 크고 화려하게 만든다.
높이가 작업자 키의 두배는 됨직한 형형색색 등이 뿜어내는 불빛이 단연 매혹적이었다. 그렇지만 제작 실무를 담당하는 한마음선원 청년회 구성원들이 장엄등 만들기에 나서는 마음가짐을 기록한 쪽지도 장엄등 못지않게 기자의 눈길을 끌었다.
거기에는 “지구와 지구 생명들이 모두 밝고 건강하게…”, “다가오는 상대가 모두 나의 귀한 부처님”, “나, 상대, 모두를 형성시킨 한마음에 놓고 정성스럽게…”, “느리더라도 착실히 행하다 보면 어느 날 그 빛들이 모여 우리를 밝히는 등이 되지 않을까” 등의 글이 적혀 있었다.
부처님오신날(5월 15일)을 나흘 앞둔 내달 11일 서울 종로 일대에서 예정된 올해 연등 행렬에서 가장 주목받을 아이템 중 하나인 장엄등을 만드는 현장에는 만물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이 또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화려한 장엄등을 어떻게 만드는지 기술적인 측면을 살필 요량으로 찾아갔지만, 예상과 달리 작업자의 마음가짐에 더 주목하게 되는 공간이었다.
장엄등 제작은 무엇을 주제로 택할지, 즉 장엄등에 어떤 메시지를 담을지 연등 행렬 전년 가을 무렵 논의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한마음선원의 틀을 닦은 대행스님(1927∼2012)의 법문에서 어떤 부분을 올해의 주제에 반영할지 청년회를 중심으로 토의하고 법문을 결정한다.
이후에 비로소 디자인·설계, 골조, 전기 작업, 배접, 채색 등 눈에 보이는 작업을 진행한다.
한마음선원은 올해 ‘한마음의 불바퀴등’을 중심에 놓고 용, 손오공, 거북 등의 모습을 보여주는 장엄등을 제작하기로 했다. 공생의 마음으로 지구와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위기를 극복하고 만(萬) 생명이 더불어 살아가기를 발원하는 마음을 담는다.
청년회 지도 법사이며 장엄등 제작 실무를 총괄하는 혜모스님은 “전쟁이나 기후 문제로 인해서 어려운 시기”라며 “그런 것들이 해결되어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불국토를 만들도록 정성을 담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자 학교나 일터 등 각자의 자리에서 일과를 마친 청년회원들이 하나둘 모여 붓을 잡고 채색에 몰두했다.
장엄등의 크기에 비하면 붓놀림은 한 땀 한 땀 바느질하는 것처럼 신중하고 더디기만 했다. 불편한 자세로 장시간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니 선원을 대표해서 청년회가 작업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체력적인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본격적인 제작 시즌이 되면 자정을 훌쩍 넘기도록 작업한다. 새벽까지 등을 만들다가 쪽잠을 자고 바로 출근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혜모스님은 이런 과정을 수행에 비유했다.
“과거에는 산사에 들어가서 참선했지만, 이 청년들은 바깥 활동을 하면서도 수행이 될 수 있도록 여기서 생활선(禪)을 실천하고 있어요. (장엄등을 만드는) 이 기간은 완전히 안거(安居)입니다.”
청년들이 길고 고된 작업을 기꺼이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혜모스님은 “수행이니까 하는 것”이라며 “자신의 마음이 밝아지고 마음이 커지는 것을 느끼니 하는 것이다. 안 그러면 돈 줄 테니 하라고 해도 못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배득렬(32) 한마음선원 청년회장은 장엄등 제작이 마음을 다스리는 일이라고 반응했다.
여럿이 함께 작업을 하다 보면 의견 차이가 있기 마련이고 그런 갈등을 넘어서는 것이 일종의 수행이라는 것이다.
“협업하는 과정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기도 하고 화를 내는 경우도 있어요. 그런 일을 어려워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것조차도 이제 수행으로 삼으려고 합니다.”
선원 입장에서 보면 장엄등은 기획에서 완성까지 사실상 일 년 주기로 이뤄지는 대규모 불사다. 하지만 연등 행렬이 끝나면 장엄등을 거의 다 해체한다.
어렵게 만든 장엄등을 폐기하는 것은 결단이 필요해 보인다. 혜모스님은 이 역시 수행의 일종이라고 했다.
“보관할 공간이 없으니 다 해체하고 미련 없이 버립니다. 직접 만든 것이니 많은 애착을 느끼지만 때가 되면 모두 내려놓아야 하는 것을 배웁니다.”
배 청년회장은 “(우리가 장엄등 제작) 전문가는 아니라서 한 번에 모든 것이 착착 되지는 않는다”며 시행착오를 거치며 수정을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청년회 선배 등으로부터 경험을 공유받아 전문가 못지않은 수완을 발휘한다. 연등에 들어가는 각종 전기 장치 설치 기술이나 용접까지 선원 내에서 터득할 정도라고 한다.
장엄등 불사에 이름을 올린 약 100명의 청년회원이 작업에 참가하는 시간은 저마다의 형편에 따라 다르다. 그렇지만 연등 행렬을 때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주고 더 밝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마음만은 하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채색을 담당하는 이수진(26) 씨는 “점등식 때 불이 켜지면 마음이 좋고 밝아진다”며 “나뿐만 아니라 이것을 보는 모든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