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인기가 게임 판매량도 높여…넥슨·크래프톤도 영상화 ‘관심’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불과 수년 전까지만 해도 게임 팬들 사이에서는 ‘게임을 영화로 만들면 망한다’는 속설이 있었다.
야심 차게 IP(지식재산) 확장을 선언한 명작 게임들이 정작 스크린에서는 게이머도 영화 관객도 제대로 잡지 못하며 대부분 고전을 면치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시기 두드러진 OTT(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의 성장으로 영상 콘텐츠 제작 산업이 팽창하면서 이런 징크스도 옛말이 되고 있다.
잘 만든 게임 기반 드라마나 애니메이션이 전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구작 게임의 판매량 ‘역주행’까지 끌어내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OTT 프라임 비디오가 지난 11일 공개한 드라마 ‘폴아웃’ 시즌 1이 그 사례다.
폴아웃은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북미 대륙을 배경으로 문명을 재건하려는 다양한 세력 간의 갈등을 여러 등장인물의 시점에서 풀어낸 작품이다.
마이크로소프트(MS) 산하 게임 제작·배급사 베데스다가 판권을 보유한 동명의 공상과학(SF) 게임 시리즈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폴아웃’ 드라마는 게임 스토리와 직접적인 접점이 없는 오리지널 스토리를 내세우면서도, 원작 팬들에게 익숙한 소재와 소품을 위화감 없이 배치했다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공개 직후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 내에서 전세계 스트리밍 1위를 달성했다.
‘폴아웃’ 드라마가 좋은 반응을 얻자 원작이 된 ‘폴아웃’ 게임의 이용률까지 늘어났다.
PC 게임 플랫폼 ‘스팀’ 정보 분석 사이트 스팀DB에 따르면 ‘폴아웃 4’ PC판 동시 접속자 수는 드라마 출시일 기준 2만 명대에서 17일 8만4천 명으로 크게 늘었다. 드라마처럼 미국 서부를 배경으로 한 ‘폴아웃: 뉴 베가스’도 같은 기간 6천 명에서 2만3천 명까지 급등했다.
지난해에는 명작 콘솔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 파트 1을 기반으로 한 동명의 드라마가 ‘HBO 맥스’에서 방영되기도 했다.
‘더 라스트 오브 어스’ 드라마는 원작의 캐릭터와 스토리를 잘 재현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올해 초 미국 에미상 시상식에서 총 24개 부문 후보에 올랐고, 이 중 8개 분야에서 수상하는 등 게임 IP 기반 영상물의 저력을 보여줬다.
라이엇게임즈는 2021년 넷플릭스를 통해 선보인 리그 오브 레전드(LoL) 3D 애니메이션 ‘아케인’을 선보였다.
아케인은 높은 완성도로 공개 첫 주 한국 등 52개국에서 1위를 기록, 2022년 에미상 ‘최우수 애니메이션상’을 받았고, 올해 중으로 시즌 2가 공개될 예정이다.
글로벌 진출을 노리는 국내 게임업계도 IP의 영상화에 대한 관심이 크다.
넥슨게임즈[225570]의 대표작 ‘블루 아카이브’는 일본에서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돼 지난 7일 한일 양국에서 방영을 시작했다.
원작 초반부 스토리인 ‘대책위원회 편’의 줄거리와 캐릭터를 그대로 살려냄과 동시에 게임판의 플레이어이자 모습이 전혀 등장하지 않던 ‘선생’이 직접 등장하는 것이 특징이다. 매주 1화씩 총 12화 분량으로 기획됐으며, 현재는 2화까지 공개됐다.
‘블루 아카이브’ 애니메이션은 국내에서 케이블 채널 ‘애니박스’뿐 아니라 왓챠, 티빙, 웨이브 등에서도 서비스 중이다. 추후 넷플릭스나 디즈니+ 등 다른 OTT 입점을 통해 해외 진출도 노려볼 수 있단 관측도 나온다.
이와 별개로 넥슨은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루소 형제가 설립한 영화제작사 AGBO 지분에 투자, 최대 주주 자리에 오른 바 있다.
넥슨 지주사 NXC는 작년도 연결감사보고서에서 AGBO 투자 지분 4천122억원을 손상차손으로 반영했다. AGBO 투자를 주도한 오웬 마호니 일본법인 대표도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일각에서는 넥슨이 영화 산업에서 손을 떼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왔다.
그러나 넥슨 측은 AGBO와의 파트너십이나 지분 보유 여부에는 변화가 없다는 입장이다.
크래프톤[259960]은 대표작 ‘PUBG: 배틀그라운드’를 소재로 한 8∼9분 분량의 단편 영화를 두 차례에 걸쳐 공개한 바 있다. 2021년 공개된 ‘그라운드 제로’에는 배우 마동석이, 지난해 12월 공개한 ‘영예의 전장 론도’에는 이정재가 출연했다.
어디까지나 대규모 업데이트를 앞두고 게임을 홍보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든 작품이지만, 추후 게임 IP를 영화·드라마 등의 영상 매체로 확장할 가능성도 실험해본 것으로 풀이된다.
이밖에 ‘P의 거짓’ 제작사 네오위즈[095660]도 지난해 북미 지역 영화 제작사로부터 영상화를 제안받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juju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