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멀티 레이블 간 내부 갈등 물위…민희진 향한 동정 여론도
전문가 “하이브의 성장통…K팝 발전 방향으로 해결해야”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뉴진스가 소속된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와 모회사 하이브 간의 갈등이 격화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민 대표의 파격적인 기자회견을 계기로 가요계를 넘어 사회적 관심사로 확산했고, 양측은 서로를 향한 고소·고발 난타전을 예고한 상태다.
가요계에서는 사태의 원인인 ‘배임 의혹’과 ‘주주 간 계약 갈등’의 기저에 하이브의 급격한 성장에 따른 멀티 레이블 체제의 파열음이 있다고 보고, 이를 슬기롭게 해결해야 K팝 산업이 한층 더 성숙해질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 K팝 키운 멀티 레이블…포장지 벗겨내니 갈등 잠복
28일 가요계에 따르면 하이브는 빅히트뮤직(방탄소년단·투모로우바이투게더), 플레디스(세븐틴·프로미스나인·투어스), 쏘스뮤직(르세라핌), 어도어(뉴진스), 빌리프랩(엔하이픈·아일릿), KOZ(지코·보이넥스트도어) 등 여러 레이블을 거느리고 있다.
자회사 격인 각 레이블이 음악 등 콘텐츠 제작을 전담하고, 홍보(PR)·법무 등 일부 공통 기능은 모회사 하이브에 모여 있는 구조다. 이를 통해 레이블은 회사 운영을 위한 기본적인 인프라를 하이브와 공유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그런데 민 대표는 르세라핌 데뷔 과정에서의 충돌(쏘스뮤직)이나 아일릿이 뉴진스의 콘셉트를 따라 했다는 주장(빌리프랩) 등을 가감 없이 공개해 일부 레이블 간 갈등을 물 위로 끌어 올렸다.
민 대표는 뉴진스가 하이브의 첫 걸그룹인 것으로 알고 쏘스뮤직 출신 연습생 민지 등과 함께 준비했지만, 아이즈원 출신 사쿠라·김채원을 영입한 르세라핌에 데뷔 순서가 밀렸다고 주장한다. 쏘스뮤직에 있던 연습생을 어도어로 옮기는 과정에서 위로금 20억원을 지급한 점과 민 대표가 제작했음에도 어도어의 지분 100%를 하이브에 준 점도 불만 요소로 지목했다.
민 대표는 또 하이브가 뉴진스 홍보에 소극적이었으며, 지난 3월 데뷔한 아일릿 소속사 측이 뉴진스의 성공 공식(포뮬러)과 키(핵심) 안무를 허락도 없이 갖다 썼다고 주장했다.
하이브는 이러한 주장들에 대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하이브는 민 대표 측이 ‘노예 계약’으로 문제 삼은 ‘풋옵션'(주식을 특정 가격에 팔 권리) 문제도 해결됐다는 입장이다.
민 대표가 문제 삼은 것은 자신이 보유한 어도어 지분 18% 가운데 풋옵션을 행사할 수 없는 약 5%였다.
이 5%에 ‘하이브의 허락 없이 제삼자에게 매각하지 못한다’는 조항과 ‘하이브가 (주식) 우선매수권을 갖는다’는 조항이 적용되면서 하이브의 의지에 따라 경업금지라는 족쇄가 영원히 따라붙는다는 주장이었다.
하이브는 그러나 이는 다른 이들에 앞서 우선매수권을 가지려는 뜻이었지 민 대표가 주식을 아예 팔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다며 계약서 별지를 추가해 모호한 부분이 없도록 정리하겠다는 뜻을 지난 연말 명확하게 이야기했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민 대표는 지난번 기자회견에서 “(방)시혁님이 손을 떼야 한다”며 하이브의 멀티 레이블 시스템과 지배구조 자체에도 직격탄을 날렸다.
하이브에서 방탄소년단·투모로우바이투게더(빅히트뮤직), 엔하이픈·아일릿(빌리프랩), 르세라핌(쏘스뮤직) 등의 노래에는 작사·작곡가로 방 의장이 들어가 있다. 음악적으로 관여했거나 현재 하고 있다는 의미다.
민 대표는 “의장이 주도하면 알아서 기는 사람이 생겨난다”며 “그런 문제가 생기지 않으려면 최고 결정권자가 그냥 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율적으로 경쟁하고 서로 건강하게 큰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하이브는 오히려 견고한 멀티 레이블 체제 덕분에 문제를 사전에 포착해 빠른 조처가 가능했다고 보고 있다.
가요계 일각에서는 뉴진스의 컴백 싱글이 방탄소년단(BTS) RM 솔로 2집과 같은 날인 다음 달 24일 발매되는 것을 두고 의아하게 보는 시각도 있다. 한 회사에서 월드스타급 가수의 신보를 동시에 발매하는 게 이례적이어서다.
그러나 하이브는 음반 발매는 각 레이블에서 자체적으로 하는 만큼, 멀티 레이블 체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입장이다.
◇ ‘X저씨들’에 이어 포카·밀어내기 이슈까지…K팝 팬층이 몰입했다
민 대표가 가요계에서 흔치 않은 ‘여성 스타 제작자’라는 점은 K팝의 주 소비층이 젊은 여성이라는 점과 맞물려 미묘한 여론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하이브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하이브 임원 17명 가운데 이미경 사외이사와 김주영 CRHO(최고인사책임자)를 제외한 15명은 모두 남성이다.
민 대표는 이들 회사 임원을 향해 “X저씨들”이라는 비속어를 써 가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번 사안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민 대표가 짚어낸 K팝 산업의 ‘그늘’도 생각해볼 사안이라는 시각도 있다.
현재 K팝 시장에서는 음반의 판매량을 올리기 위해 포토 카드 등 다양한 ‘미끼 상품’을 넣는 것 외에도 이른바 ‘밀어내기’를 한다는 의혹이 만연해 있다.
밀어내기란 중간 판매상에게 음반 물량 일정 부분을 구매하게 해 판매량을 올리는 방법인데, 중간 판매상은 이 물량을 소진할 때까지 멤버들을 직접 동원하는 팬 사인회 등을 연다. 그렇게 되면 가수도 체력적으로 힘에 부치고, 팬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음반을 반복해 구매하게 된다.
밀어내기를 통한 판매량 올리기를 주요 기획사 제작자가 직접 언급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다.
민 대표는 랜덤 포토 카드나 앨범 재킷 등 상술 문제도 지적하며 “지질하게 포토 카드를 팔지 말고 콘텐츠로 승부하자고 했다”고 일갈했다.
김도헌 대중음악평론가는 “민 대표의 이 발언은 판매자가 아니라 K팝 팬 혹은 소비자의 편에 서서 한 것이기에 일부 호응이 있는 것 같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번 사태는 급격하게 커진 하이브의 성장통”이라며 “내부 역학 관계에서 비롯된 이번 문제를 K팝에 발전이 되는 방향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하이브 “배임” 고발 vs 민희진 “개인정보보호 등 고소”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이 된 민 대표의 ‘경영권 침탈’과 배임 의혹 등은 하이브의 고발에 따라 수사기관에서 시비가 가려지게 됐다.
하이브는 지난 25일 민 대표와 신모 어도어 VC(부대표)를 서울 용산경찰서에 고발했다. 신모 VC는 문제의 ‘(하이브에서) 빠져나간다’ 문건을 만든 A씨와는 다른 인물이다.
민 대표도 하이브 측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예고했다. 그는 ‘주술 경영’ 의혹을 제기한 하이브를 겨냥해 “개인 사찰”이라며 법적 대응 방침을 밝혔다.
이에 따라 그가 명예훼손이나 개인정보 보호법 위반 등으로 하이브 측을 고소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ts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