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카드 부작용 ‘작심 비판’…확률형 아이템과 무엇이 다른가
(서울=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우리는 찌질하게 포토카드 랜덤으로 돌려서 팔지 말고, 콘텐츠로 승부해서 얼마나 파는지 한번 보자…”
인기 그룹 뉴진스의 소속사 어도어의 민희진 대표가 지난달 25일 진행한 긴급 기자회견 내용이 여전히 화제다.
주된 내용은 모기업 하이브[352820]가 제기한 민 대표의 어도어 경영권 탈취 시도 의혹에 반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민 대표가 그 과정에서 비판한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포토카드 끼워팔기, 음반 밀어내기 관행, 아이돌 콘셉트 베끼기 같은 ‘그림자’는 많은 K팝 소비자의 공감을 얻었다.
2시간가량 이어진 기자회견을 지켜보면서, 문득 과도한 상술로 소비자들의 신뢰를 잃은 국내 게임업계가 겹쳐 보였다.
민 대표가 강하게 비판한 포토카드는 현재 K팝 업계에서 음반 판매량을 견인하는 핵심 상품이다.
포토카드는 아이돌 그룹 멤버의 사진이 담긴 명함 크기의 카드다. 실물 음반을 구매하면 한두 장이 랜덤하게 들어있어 팬들의 수집 욕구를 자극한다.
앨범 종류별로 다른 포토 카드가 들어있거나, 특정 유통사가 판매하는 음반에서만 얻을 수 있는 한정판 카드가 들어있는 경우도 잦다.
경쟁형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이나 캐릭터 수집형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어딘가 익숙하게 느껴질 법한 사업 모델이다.
문제는 포토카드 마케팅이 과열되면서 이를 얻으려고 한 사람이 같은 앨범 수십∼수백 장을 구매하고, 포토카드만 챙긴 뒤 나머지는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것이다.
최근 소셜미디어에는 일본 도쿄 시부야 거리에 그룹 세븐틴의 앨범이 무더기로 버려져 있는 사진이 올라와 충격을 주기도 했다.
포토카드 마케팅이 음반 차트를 교란하고,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를 양산한다는 지적은 민 대표의 기자회견 전부터 나온 지 오래다. 하지만 확실한 캐시카우가 필요한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게임 업계도 마찬가지다. 당첨률이 바늘구멍 수준인 확률형 아이템에 매달 수천만∼수억원씩을 쓰는 ‘고래’ 유저들의 가능성을 보고 혁신을 시도하기보다는 유저를 쥐어짜는 BM(수익모델) 개발에 골몰했다.
소위 리니지라이크(리니지류)라는 멸칭으로 불리는, 비슷비슷한 페이투윈(돈을 쓸수록 강해지는 구조) 게임들이 국내 게임업계를 장악하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게이머들은 한국 게임시장에 등을 돌렸다.
민 대표가 지적한 뜨는 아이돌 콘셉트 베끼기와도 일맥상통하는 지점이다.
몇몇 게임사는 아이템 확률을 조작하는 일도 서슴지 않았다. 그 결과는 게이머들의 연쇄적인 항의 시위와 확률형 아이템 규제 법안 통과였다.
올해 초에는 공정위까지 나서 확률 조작이 사실로 밝혀진 게임사에 100억원이 넘는 과징금을 부과하고, 민원이 제기된 업체를 대상으로 현장조사를 실시하며 칼을 빼 들고 나섰다.
공교롭게도 공정위는 지난해 주요 연예기획사의 포토카드 ‘끼워팔기’ 혐의에 대해서도 현장조사에 착수한 바 있다.
게임사들은 인터넷 방송인들에게 소위 말하는 ‘프로모션’, 즉 광고료를 지급하고 확률형 아이템에 거액을 쓰는 모습을 방송하게 했다. 시청자들은 여기에 자극받아 ‘혹시 나도’ 하는 생각에 경쟁적으로 확률형 아이템을 구매한다.
일부 게임사들은 아예 게이머들이 결제한 금액의 일부를 인터넷 방송인에게 후원하는 시스템을 제도화하기도 했다.
민 대표가 지적한 ‘밀어내기’, 즉 음반 유통사에 앨범 물량을 떠넘겨 판매량을 높이고 유통사는 이를 소진하기 위해 무리하게 팬 사인회를 여는 관행과도 유사하다.
그러는 사이 중국산 게임은 부쩍 높아진 퀄리티와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한국 시장을 잠식했다.
앱 마켓 분석 서비스 ‘모바일인덱스GAME’이 지난달 말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앱 마켓에서 매출 톱 20 내 중국산 게임 비중은 30%를 넘었다.
매출 순위 1위를 터줏대감처럼 지키고 있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리니지M’ 역시 중국산 방치형 게임 ‘버섯커 키우기’,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 ‘라스트워’에 차례로 왕좌를 내줬다.
다행히 게임업계도 뒤늦게 게임의 본질인 재미와 새로운 경험에 초점을 둔 게임을 조금씩 내놓고 있다.
그 과정에서 ‘데이브 더 다이버’나 ‘P의 거짓’, ‘스텔라 블레이드’처럼 높은 평가를 받는 게임이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아직 게임산업 전반에 대한 게이머의 신뢰를 되찾으려면 갈 길은 먼 상황이다.
“물에 녹는 종이 도입이 무슨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개선) 경영인가. 차라리 앨범을 덜 찍게 만들어야지, 왜 이런 말장난을 하느냐”는 민 대표의 일갈을 소비자 신뢰 하락에 직면한 게임업계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하는 이유다.
juju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