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 데뷔 꿈꾸는 서울 청년의 성장 이야기…임찬익 감독 연출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우리는 세상의 중심부에 어떻게든 비집고 들어가려고 아등바등 경쟁한다. 부와 권력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삶은 뜻대로 되지 않고, 우리는 주변부로 밀려나곤 한다. 이곳에서 우리를 기다리는 건 부와 권력이 아니라 삶의 깨달음 같은 것이다.
임찬익 감독의 신작 ‘다우렌의 결혼’은 서울에서 영화감독으로 데뷔해보려고 분투하다가 카자흐스탄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정신적으로 성장하는 청년 승주(이주승 분)의 이야기다.
조감독으로 다큐멘터리 촬영 현장을 전전해온 승주는 감독으로 자기 이름을 내건 작품을 찍어보는 게 꿈이다.
그런 승주에게 카자흐스탄의 고려인 결혼식을 소재로 다큐멘터리를 찍어 달라는 제안이 들어온다. 현지 고려인 유라(박루슬란)가 감독이고, 승주는 이번에도 조감독이다.
별 기대 없이 촬영감독 영태(구성환)와 카자흐스탄행 비행기에 오른 승주는 알마티에서 유라를 만나지만, 유라가 갑자기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일을 전부 떠맡게 된다.
유라의 소개로 카자흐스탄 남쪽 시골 마을로 내려간 승주와 영태는 고려인 결혼식 현장을 찾지 못해 애를 먹는다.
제작사의 압박을 못 이긴 승주는 결국 있지도 않은 결혼식을 꾸미기로 하고, 자기가 ‘다우렌’이라는 이름의 신랑 노릇을 한다. 신부 역할은 마을에서 알게 된 여성 아디나(아디나 바잔)에게 맡긴다.
가짜 결혼식 소동을 그린 코미디로 흐르는 듯하던 영화는 아디나의 사연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방향을 튼다.
양궁선수의 꿈을 키워온 아디나가 한국을 동경하는 걸 눈치챈 승주가 “더 넓은 세상으로 가보라”며 한국행을 제안할 때 “이곳이 작은 세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며 발끈하는 아디나의 모습에선 단순한 자존심을 넘어 인간적인 고결함 같은 게 느껴진다.
어떻게든 감독으로 데뷔하겠다며 거짓 다큐멘터리나 만들고 있는 승주는 그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진다.
카자흐스탄 시골 마을 주민들에게 고결함이 있다면 그 원천은 아름다운 자연에 있을 것이다. 이를 보여주기라도 하듯 영화는 카자흐스탄의 전원 풍광을 담아낸다.
어떤 목적 아래 눈속임 계약에 참여하게 된 남녀가 진실한 감정에 눈을 뜨는 이야기라는 점에서 줄리아 로버츠 주연의 ‘귀여운 여인'(1990)과 같은 영화가 떠오르기도 한다.
‘다우렌의 결혼’은 ‘체포왕'(2011)으로 데뷔한 임 감독이 한국영화아카데미(KAFA) 글로벌 과정의 해외 촬영 프로젝트로 연출한 작품이다.
저예산 영화다 보니 멧돼지 사냥 장면의 컴퓨터그래픽(CG) 등이 어색한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이야기의 흐름과는 상관없어 크게 거슬리지는 않는다.
아디나를 연기한 아디나 바잔은 카자흐스탄 신예 배우로, 오디션을 거쳐 캐스팅됐다. 유라 역의 박루슬란은 실제 고려인 감독으로, 이 영화의 제작에도 참여했다.
6월 12일 개봉. 83분. 12세 관람가.
ljglory@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