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스크바 테러 3개월만에 또…극단주의 세력 공격에 무방비 노출

다게스탄 공화국 교회·경찰서 등 연쇄 테러…”민간인 4명 등 19명 사망”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잦은 지역…러 정교회 축일 노려 공격

러시아 다게스탄 테러
(다게스탄 A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러시아 서남부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에서 테러가 발생해 경찰들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2024.06.24. [러시아 대테러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러시아에서 지난 3월 100명 넘는 사상자를 낸 수도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테러 공격이 발생했다.

정확한 피해 규모와 범인들의 정체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나, 러시아 정교회 축일에 종교 시설을 노리고 발생한 이번 공격을 두고 러시아가 극단주의 세력의 공격에 무방비로 노출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23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영국 BBC 방송 등 외신에 따르면 이날 저녁 러시아 서남부 다게스탄 자치공화국 수도 마하치칼라와 데르벤트 지역에서 괴한들이 유대교 회당과 정교회 성당, 경찰서 등에 침입해 총기를 난사했다.

데르벤트 지역 유대교 회당 한 곳에서는 총격에 이어 화재가 발생해 건물이 전소됐다.

당국은 이날 해당 지역의 괴한들을 상대로 대테러 작전을 진행해 테러범들을 사살했다고 밝혔다. 작전은 이튿날인 24일 오전 종료됐다.

타스통신 등에 따르면 러시아 조사위원회는 24일 성명에서 이번 공격으로 경찰 15명과 민간인 4명 등 총 19명이 사망했다고 밝혔다.

사망한 민간인 중에는 러시아 정교회 신부 1명도 포함됐다.

조사위원회는 성명에서 당국이 대테러 작전 중 총격범 5명을 사살했으며 이들의 신원도 확인했다고 덧붙였다.

러시아 다게스탄 테러 현장
(다게스탄 AP=연합뉴스) 23일(현지시간) 러시아 서남부 다게스탄 자치공화국에서 테러가 발생해 경찰들이 수사를 벌이고 있다. 2024.06.24. [러시아 대테러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이번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한 다게스탄 공화국은 국민 다수가 무슬림으로, 이전에도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 공격이 여러 차례 발생했던 지역이다.

2007∼2017년에는 이슬람 분리주의 단체인 ‘캅카스 에미리트’가 다게스탄과 인근 체첸, 잉구셰티야 공화국 등에서 테러를 벌여왔다.

이날 공격 역시 러시아 정교회의 축일인 오순절에 발생했다는 점에서 종교와 연관된 동기로 범행이 이뤄졌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정교회 수장 키릴 대주교는 이번 테러가 오순절에 발생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라며 “적들이 우리 사회의 종교 간 평화와 화합을 파괴하려는 시도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NYT는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 이후 3개월여 만에 발생한 이번 테러를 두고 “극단주의 세력의 폭력에 대한 러시아의 취약성이 드러났다”고 짚었다.

앞서 지난 3월 22일 모스크바 시내 한 공연장에서 총격·방화 테러가 발생해 140여명이 숨지고 550여명이 다쳤다.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는 조직 분파인 이슬람국가 호라산(ISIS-K)이 테러의 배후라고 주장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다게스탄 공항에 이스라엘발 여객기가 착륙하자 반유대주의 시위대가 이를 습격하기도 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반유대주의 움직임이 강화하면서 러시아 내 유대인 공동체를 향한 위협도 증가하는 모습이다.

이날 유대교 회당 등이 공격당한 데르벤트 지역은 고대 유대인 공동체의 본거지로도 알려져 있다.

테러로 검게 탄 모스크바 공연장
(모스크바=연합뉴스) 최인영 특파원 = 23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 북서부 크라스노고르스크의 ‘크로커스 시티홀’ 공연장 모습. 전날 이 공연장에서는 무차별 총격·방화 테러로 200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24.3.24 abbie@yna.co.kr

다만 크렘린궁 등 러시아 당국은 이번 테러를 저지른 범인의 신원과 범행 동기,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과의 연관성 등에 대해 아직 말을 아끼고 있다.

러시아 당국은 지난 3월 발생한 모스크바 공연장 테러에 대해 이슬람 급진주의자들의 소행은 맞지만 그 배후에는 러시아와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도 있다고 주장해왔다.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러시아는 종교 간 화합 및 종교·민족 간 단결의 특별한 사례”라며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공격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러시아의 일부 정치인들은 이날 다게스탄 테러에 대해서도 미국 등 서방에게 그 책임이 있다고 강변했다.

레오니드 슬루츠키 의원은 이번 공격이 “러시아 국민을 공포에 떨게 하고 분열시키려는 목표”로 이뤄졌으며 “희생자들의 피”가 미국의 손에 묻어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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