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한 꿈 계속 꾸는 이유는…신간 ‘당신이 잠든 사이의 뇌과학’

“논리·현실 감각을 담당하는 ‘수행네크워크’ 꺼져서 통제 불가”

명상하고 자는 사람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한바탕 봄 꿈’을 의미하는 ‘일장춘몽'(一場春夢)이라는 표현처럼 꿈은 덧없다고들 한다. 하지만 인간이 자면서 꿈을 꾸는 시간은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과거 학자들은 자율신경성 활동이 불규칙한 ‘렘수면’ 단계에서만 꿈을 꾼다고 여겼다. 수면 중 1∼2시간 정도 꿈을 꾸며, 인생 전체로 따지면 약 12분의 1 정도를 꿈속에서 보낸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근래 실험에서는 렘수면뿐만 아니라 수면의 모든 단계에서 꿈을 꿀 수 있는 것이 드러났다. 꿈을 꾸기 위해 인생의 거의 3분의 1 정도를 사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신경외과 전문의이며 신경과학자인 라훌 잔디얼은 최근 번역·출간된 신간 ‘당신이 잠든 사이의 뇌과학'(웅진지식하우스)에서 이처럼 일생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꿈의 메커니즘, 특정한 내용의 꿈을 꾸는 이유 등을 해설한다.

책에 따르면 꿈은 뇌의 전기적인 자극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실험을 통해 확인됐다. 잠든 인간은 수동적인 상태로 보이지만 뇌는 꿈을 꾸고 있을 때 가장 생생하게 반응한다. 뇌에서 생존과 관련된 반응이나 감정 및 기억과 관련된 부분인 감정 변연계는 꿈을 꾸는 동안 깨어 있을 때의 최대 4∼5배 정도의 신진대사를 보인다고 한다.

공원에서 개를 안고 잠든 여성
[Pittsburgh Post-Gazette / AP=연합뉴스 자료사진]

인간은 어린 시절에 악몽을 가장 많이 꾼다. 어린이는 통상 어른의 보호를 받고 있음에도 꿈속에서 괴물, 악마, 초자연적인 존재에게 쫓긴다. 어린이는 꿈과 현실의 차이를 구분하는 인지 능력이 덜 발달했으며 악몽은 어린이가 타인과 분리된 독립적인 자아를 형성하고 꿈과 현실을 구분하는 데 도움을 주는 보편적 인지과정일 가능성이 있다고 책은 추정한다.

인간이 꿈을 꾸는 전체 시간 중 약 12분의 1 정도는 성적인 내용으로 채워진다. 관능적이거나 에로틱한 내용의 꿈은 원하지 않는다고 멈출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평소 활발한 성적인 활동을 하는지, 혹은 금욕주의적인지에 따라서 등장 여부가 달라지지 않는다.

꿈을 꾸는 동안 뇌에서는 논리, 질서, 현실 감각을 담당하는 ‘수행 네크워크'(Executive Network)가 꺼지고 멍한 상태이거나 몽상에 빠졌을 때 활발해지는 영역인 이른바 ‘상상력 네트워크'(Imagination Network)가 이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논리적인 사고를 하지 않기 때문에 현실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야한 시나리오가 꿈에서 벌어져도 제동을 걸 수 없고 그에 대한 도덕적인 판단도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책 표지 이미지
[웅진지식하우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책은 야한 꿈이 종의 이익을 위해 성적 유동성과 독창성이 진화한 일종의 인지적 장(場)일 수도 있다고 설명한다. 예기치 못한 상황에 생존하기 위해 창의력이 필요한 순간 꿈의 예측불가능한 특성이 종의 생존과 적응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에로틱한 꿈은 다양한 성적 탐험을 하도록 인간을 자극하며, 이는 번식할 수 있을 만큼 오래 생존하는 것이 모든 생명체의 본능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는 의미다. 책은 다만 꿈의 내용이 실제 욕망과 동일하지는 않다고 본다. 예를 들어 불륜을 저지르는 꿈이 바람을 피우고 싶은 욕망의 신호일 가능성은 작으며 그저 상상력 네트워크가 작동한 결과일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다.

조주희 옮김. 29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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