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육사의 삶 조명한 책 ‘이육사: 시인이기 전에 독립투사’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노아 부르게 하리라’
1945년 12월 17일 자유신문에는 ‘광야'(曠野)라는 제목의 시가 실렸다.
시구에는 일제의 탄압이 가혹해지던 상황에서 시인이 끝까지 놓치지 않은 ‘저항’이 담겨 있었다. 해방이 지난 뒤에야 발표된 시는 이육사(1904∼1944)의 외침이었다.
역사학자인 김희곤 국립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관장이 쓴 ‘이육사: 시인이기 전에 독립투사'(푸른역사)는 ‘저항시인’으로 잘 알려진 이육사의 삶을 들여다본 책이다.
독립운동사의 시각에서 이육사의 삶과 활동을 재조명하려는 시도다.
저자는 “육사의 생애 40년, 그 가운데서도 활동기 20년이란 세월은 짧다. 그러니 뭐 그리 복잡하고 풀지 못하는 수수께끼가 있을까 싶지만 갈수록 태산”이라고 말한다.
책은 당시 문인들이 남긴 자료, 일제강점기 경·검찰 기록, 언론 보도, 현장 답사 및 인터뷰 자료를 토대로 이육사의 생애를 복원한다.
이육사가 사용한 필명의 변천사는 특히 흥미로운 부분이다.
그의 본명은 이원록, 어릴 때 이름은 이원삼이다. 1930년대 초 신문사 기자로 활동하던 시절에도 원삼이라는 이름을 더러 쓰기도 했다고 한다.
이육사라는 필명은 그가 수감돼 있을 때 받은 수인번호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저자는 1930년 10월 잡지 ‘별건곤(別乾坤)에 ‘대구사회단체개관’이라는 평문을 발표하면서 ‘이활'(李活)과 ‘대구 이육사'(大邱 二六四)를 함께 쓴 점을 강조한다.
이활은 이육사가 처음으로 발표한 시 ‘말’에서 쓴 이름이다.
저자는 “대구에서 활동하고 있는 이활이 앞으로 수인번호 264라는 이름으로 글을 발표하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 육사의 한문 표기가 ‘고기를 먹고 설사하다’는 뜻의 ‘肉瀉’에서 ‘戮史'(역사를 죽이다)를 거쳐 ‘陸史’로 자리 잡는 과정을 짚으며 “항일투쟁의 뜻을 담고 있다”고 설명한다.
책은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돼 투옥되던 시기부터 중국을 드나들며 민족의식을 키우던 때, 초급 군사간부로 활동하던 시절까지 이육사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
2010년 펴낸 ‘이육사 평전’의 개정판이다. 이육사 탄생 120주년과 순국 80주기를 맞아 그간의 연구 성과를 더하고 책을 새롭게 구성했다.
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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