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로 보는 세상] 차별과 해방

(서울=연합뉴스) 도광환 기자 = 미국 사회에 잠복한 고약한 올가미는 인종차별 문제다.

1960년대 민권운동 이후 한결 해소되긴 했지만, 1992년 발화된 LA 폭동, 2013년부터 전개된 ‘블랙 라이브즈 매터(Black Lives Matter)’ 등은 미국적 모순을 여과 없이 드러낸 굵직한 사건이다.

흑인(아프리카계 미국인) 민권이 한 단계씩 숙성하던 중, 2016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때 한 흑인 여성이 20달러 지폐 인물로 선정됐다. 아직 인쇄되진 못하고 있지만, 해리엇 터브먼(1822~1913)이다.

해리엇 터브먼
EPA

터브먼은 흑인 3세대 노예였다. 29세 때 노예제도가 폐지된 펜실베이니아로 탈출한 이후 흑인 노예들을 남부에서 줄기차게 탈출시켰다. 유대인을 이집트로 탈출시킨 모세에게 빗대 ‘흑인들의 모세’로 불리는 인물이다.

터브먼의 영웅적인 활동에 감응해 연작으로 그린 화가가 있다. 제이콥 로런스(1917~2000)다.

1930~60년대 곤궁했던 미국 흑인들의 고난을 ‘흑인 이주’ 연작과 ‘미국의 투쟁’ 연작으로 작업했으며, 터브먼 일생을 39점이나 그리며 그녀가 벌인 목숨 건 실천을 화폭에 되살렸다.

해리엇 터브먼 연작 #7 (1940)
햄프턴 대학교 미술관 소장

외면받은 시기도 있었지만, 마침내 로런스의 작품들은 1942년 뉴욕현대미술관 주최로 2년 동안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대중들 앞에 서기도 했다.

흑인 이주 연작 #40 (1941)
뉴욕 현대미술관 소장

로런스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타고난 재능으로 독특한 그림 세계를 다져 나갔다. 그가 그은 선들은 ‘다이내믹 큐비즘’으로 일컬어지며, 검은색 바탕 위에 입힌 강렬한 색들은 ‘색채의 해방’으로 불리기도 한다.

‘슈팅 갤러리’ (1946)
워커 아트 센터 소장

로런스가 활약하던 시기, 여러 분야에서 흑인들 활동이 활발해졌다. 재즈에서 루이 암스트롱(1901~1971), 성악에서 마리아 앤더슨(1897~1993), 영화에서 시드니 포이티어(1927~2022) 등이다. ‘흑인 영웅’들의 본격적인 등장이었다.

로런스를 계승한 듯,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로런스와 비슷한 화풍과 주제로 미국 미술계를 강타한 화가가 있다. 케리 제임스 마셜(1955~)이다.

마셜 그림에서도 가장 긴요한 색은 검정이다. 검은 바탕에 검은 인물을 그리기도 했다. 최근 작품에선 검정 주조 위에 화려한 색상이 곳곳에 퍼졌다.

그의 초상들 주인공은 강렬하게 앞을 응시하는 경우가 잦다. 차별을 노려보고, 해방을 수확하려는 시선이다.

무제 (2008)
하버드 대학교 미술관 소장

마셜 그림의 바탕은 소설가 랠프 엘리슨(1914~1994)이다. 1952년 미국 문학계를 강타한 엘리슨 데뷔 장편 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The Invisible Man)’은 백인 중심 사회에서 차별받는 흑인들 소외를 다룬 작품인데, 마셜이 이 소설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랠프 앨리슨 소설 ‘보이지 않는 인간’
민음사 표지

‘보이지 않는 인간’은 이렇게 시작한다. “내가 보이지 않는 것은 사람들이 나를 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려고 하지 않는 시선이 줄곧 미국을 지배한 게 사실이다. 팬데믹 이후엔 아시아계 인종 차별이 광범위하게 미국과 유럽에 번지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피부색(겉) 너머로 존재(속)를 보려는 ‘해방의 시선’은 여전히 요원하다.

인종차별만이 아니다. ‘겉과 속’ 문제로 따지자면, 차별은 신화와 성경 시대부터 사라지지 않은 인류의 숙제다. 차별은 시선의 속성일까? 유전적 형질일까? 문화적 관습일까?

이유야 어떻든, 차별은 ‘얼핏’이나 ‘제법’이 아니라 ‘낱낱이’ 이겨내야 할 행복과 해방을 위한 약속이다.

doh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