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려한 외모로 데뷔 때부터 주목…1960∼1970년대 누아르 다수 출연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18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난 프랑스 배우 알랭 들롱은 수려한 외모로 1960∼1970년대 스크린을 장식한 세계적인 스타였다.
1935년 파리 근교에서 태어난 들롱은 스물두 살이던 1957년 우연히 칸국제영화제에 갔다가 영화 제작자의 눈에 띄어 배우의 길에 들어섰다.
데뷔 당시 들롱은 ‘프랑스의 제임스 딘’으로 통했다. 잘생긴 외모로 한 시대를 풍미한 미국 배우 제임스 딘은 1955년 스물넷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들롱이 세계적인 스타로 떠오른 것은 르네 클레망 감독의 영화 ‘태양은 가득히'(1960)에서다.
미국 작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스릴러 영화에서 들롱은 자기를 무시하는 부잣집 아들과 지중해에서 요트를 타다가 돌이킬 수 없는 범죄를 저지르는 청년 리플리를 연기했다.
자기가 한 거짓말을 스스로 믿는 것을 가리키는 ‘리플리 증후군’이라는 용어도 이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태양은 가득히’에서 들롱은 잘생긴 외모를 넘어선 관능미를 과시했다. 극 중 옷을 벗어 상반신을 드러낸 들롱의 모습은 지금도 영화 팬들의 기억에 남아 있다.
‘태양은 가득히’는 맷 데이먼 주연의 할리우드 영화 ‘리플리'(2000)로 리메이크되기도 했다.
이후 들롱은 주로 누아르 영화의 냉혹한 범죄자 역할을 맡았다.
‘지하실의 멜로디'(1963), ‘암흑가의 세 사람'(1970), ‘형사'(1972), ‘암흑가의 두 사람'(1973) 등이 대표적이다. 장 가뱅과 리노 벤추라 등 당대를 대표하는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이들 작품에서도 들롱의 외모는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가 다른 배우뿐 아니라 이야기 자체에서 시선을 독점해 버린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조각상처럼 깎아놓은 듯한 얼굴, 고독과 우수로 가득한 눈, 트렌치코트의 깃을 올린 채 걸어가는 모습은 들롱의 트레이드 마크로 자리 잡았다.
들롱은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들에도 출연해 연기력을 발휘했다.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을 이끈 루키노 비스콘티 감독의 ‘로코와 그의 형제들’을 예로 들 수 있다. 시칠리아 출신 극빈층 가족의 삶을 그린 이 영화에서 그는 호소력 있는 연기로 관객의 공감을 끌어냈다.
2017년 은퇴를 선언한 들롱은 영화계에서 쌓은 공로를 인정받아 2019년 칸영화제에서 명예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당시 일각에서 그의 가정폭력 전력을 문제 삼아 수상에 반발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2007년 칸영화제에서 이창동 감독의 ‘밀양’으로 배우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았을 때 들롱은 시상자로 나와 직접 전도연에게 상을 주기도 했다.
요절한 제임스 딘과 달리 88세에 세상을 떠난 알랭 들롱은 스크린 밖에서 여러 번 구설에 휘말렸다. 가정폭력 외에도 프랑스 극우 정치인 장 마리 르펜을 옹호하는 발언 등으로 논란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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