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단, 차범석희곡상 수상작 무대화…난해하지만 도전적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8주간 물리치료를 받으세요.”
“8주요? 8주나요? 그게 될까요?”
“어쩌면 이렇게 오래 갈 거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인류는 진화하잖아요. 방법을 찾을 거예요.”
원인을 알 수 없는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중년의 여자 L이 예상보다 긴 치료 기간을 두고 의사와 옥신각신한다.
두 달은 짧은 시간일지 모르지만, 이 세계 사람들에게는 보장된 미래가 아니다. 세상이 종말을 향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밤은 낮처럼 덥고 비는 온수처럼 내린다. 미열에도 바이러스가 전염된 게 아닐까 걱정할 정도로 감염병은 일상이 됐다. L이 사는 낡은 빌라에선 깊이 10m의 싱크홀이 생겼다. 창밖으로 보이는 한강에선 인어가 발견된다.
국립극단이 지난 27일부터 서울 중구 명동예술극장에서 선보이고 있는 연극 ‘간과 강’은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하루를 살아가는 L과 주변인들의 일상을 그린다. 제14회 차범석 희곡상을 받은 작품으로, 무대에 올려지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해와 달에 관한 오래된 기억’, ‘떠도는 땅’, ‘암전’ 등을 쓴 동이향 작가의 작품이다. 연출은 ‘이것은 실존과 생존과 이기에 대한 이야기’, ‘보존과학자’, ‘빛나는 버러지’ 등을 선보인 이인수가 맡았다.
동 작가는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며 일상이 별문제 없이 잘 굴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함정이라는 걸 깨닫게 됐다고 한다. 정말로 세계가 갑자기 끝장날 수 있겠다는 공포감이 드는 한편, 사람들을 만날 땐 묘한 연대감을 느꼈다.
그가 당시의 감정을 바탕으로 쓴 ‘간과 강’에는 현대인의 공허함과 불안, 공포 그리고 사랑이 담겨 있다.
L은 남편 O와 이야기를 나누고 한강 변을 걷고 지하철을 타고 병원에 가지만 그의 일상에는 묘한 어긋남이 있다.
남편과는 서로 다른 소리를 하는 대화가 이어지고 의사는 아프다는 환자에게 우울증 치료제를 권한다. 우연히 만난 낚시꾼들은 물고기는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며 물고기 입에 걸린 낚싯바늘을 쥐어뜯으면서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다.
하지만 이 작품은 등장인물의 대사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보다 이들의 앙상블과 미세한 움직임이 빚어내는 분위기를 느끼는 게 중요하다.
인간은 ‘덜 느끼는 존재’로 진화했다는 극 중 대사는 역으로 관객의 감각을 일깨우기 위한 말처럼 들린다.
경사진 무대와 아슬아슬해 보이는 철제 다리, 온통 무채색인 소품이 몰입감을 높이지만, 스토리텔링이 명확한 연극이 익숙한 관객은 이 작품이 다소 난해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단번에 알아채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런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작품이 퇴화한 우리의 오감을 되살려내는 게 아닐까 싶다. 다른 존재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의사나 낚시꾼과는 다르게 말이다.
주인공 L 역은 연극 ‘SWEAT: 땀, 힘겨운 노동’, ‘보존과학자’ 등에 출연한 송인성이, 남편 O 역은 국립극단 시즌 단원 강현우가 맡았다.
L이 우연히 만나 첫사랑에 관해 이야기하는 소년 역은 최정우가, L의 첫사랑 V 역은 성원이 소화한다.
공연은 다음 달 19일까지.
rambo@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