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0-14 08:00
투자배급사도 “스타 영화라고 무조건 투자 안 해”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최근 몇 년 사이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급감한 가운데 톱배우가 주연한 영화들도 흥행에 참패하는 사례가 누적되고 있다.
영화계에서는 배우의 이름값을 보고 작품을 관람하는 시대는 지난 지 오래라며 ‘스타 배우=흥행보증수표’ 공식도 옛말이 됐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국 대표 연기파 배우이자 ‘천만 영화’를 4편 보유한 송강호는 최근 ‘거미집’으로 쓴맛을 봤다.
김지운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극장가 대목인 추석 연휴 직전 개봉했으나 누적 관객 30만여명을 모으는 데 그쳤다. 제76회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돼 평단의 호평을 받았지만, 국내 흥행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송강호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2019) 이후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다. ‘나랏말싸미'(92만여 명), ‘브로커'(126만여 명), ‘비상선언'(205만여 명) 등이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았다.
설경구 역시 몇 년 동안 흥행과는 연이 닿지 않고 있다.
올해 기대작으로 꼽힌 이해영 감독의 ‘유령'(66만여 명), 김용화 감독의 ‘더 문'(51만여 명)으로 고배를 마셨다.
하정우도 최근 두 달 사이 2편 연속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했다. 8월 개봉한 김성훈 감독의 ‘비공식작전'(105만여 명), 지난달 극장에 걸린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톤'(87만여 명)이 손익분기점에 한참 미치지 못했다.
이 밖에도 ‘인질'(123만여 명)·’교섭'(172만여 명) 등에서 주연한 황정민, ‘장르만 로맨스'(51만여 명)·’인생은 아름다워'(117만여 명)에 출연한 류승룡도 별다른 힘을 쓰지 못했다.
코로나19 기간을 거치면서 전체 관객 수가 급감한 상황이긴 하지만, 배우들의 이름값을 생각하면 아쉬운 결과다.
업계에선 관객들의 영화 선택에서 배우가 차지하는 몫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영화 티켓 가격 인상으로 관객들이 감독, 장르, 주제, 관객 평, 매체 리뷰 등 여러 요소를 골고루 따져보는 경향이 짙어진 만큼 배우가 흥행의 절대적인 요소는 아니라는 것이다.
한 영화계 관계자는 “배우는 지금도 무시할 수 없는 흥행 요건이긴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배우 영향력이 줄어든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예전엔 A급 배우가 나오는 텐트폴은 500만 관객이 기본이었다면 요즘은 100만명도 어렵다”며 “배우들의 힘만으로는 (극장) 영화를 성공시키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배우 혹은 감독만 보고 영화를 관람하는 과거의 흐름에서 이제는 완전히 벗어났다고 봐야 한다”며 “작품을 까다롭게 고르는 요즘 관객들의 취향은 스타 마케팅에 기대기만 한 제작사에 따끔한 경고를 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스타를 캐스팅했다는 이유로 해당 작품에 투자를 결정하는 관행도 흐려지고 있다.
오히려 높은 개런티로 총제작비가 올라가 더 신중하게 작품을 살펴보게 된다고 관계자들은 전했다.
한 투자배급사 관계자는 “과거에 천만 영화를 몇 편씩 주연한 배우여도 요즘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 젊은 직원들을 중심으로 톱배우가 캐스팅됐다고 ‘무조건 투자해야 한다’는 데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ramb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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