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핀처의 차갑고 스타일리시한 스릴러…영화 ‘더 킬러’

2023-10-24 07:00

영화 ‘더 킬러’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계획대로 해. 아무도 믿지 마. 공감은 금물이야. 예측하되 임기응변은 안 돼. 돈 받고 하기로 한 일만 하는 거야.”

‘킬러'(마이클 패스벤더 분)가 표적을 향해 저격 소총을 겨눈 채 속으로 되뇐다. 그는 주문처럼 외는 이 말대로 이성과 절제를 바탕으로 작업을 끝내는 프로 킬러다.

타깃이 눈앞에 나타나기까지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려도 별문제가 되지 않는다. 요가를 하거나 음악을 듣고, 맥도날드에서 끼니를 때우며 타깃을 기다린다. 햄버거 빵은 버리고 고기와 계란만 빼먹을 정도로 식습관도 효율적이다. 오직 사람을 죽이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스릴러 영화 ‘더 킬러’는 서늘하고 기계적인 한 킬러의 복수극을 그린다. 1998년 출간 후 25년간 연재 중인 동명의 프랑스 그래픽 노블을 뼈대로 했다.

살인 청부업자는 할리우드에서 가장 좋아하는 직업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영화에서 흔한 소재다.

하지만 핀처 감독이 보여주는 킬러는 색다르다. 멋들어진 무기도, 몸에 착 붙는 수트도, 잘빠진 자동차도 없다. 그는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걸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사람이다. 관심사는 단 하나, 얼마나 효율적이고 완벽하게 임무를 완료하는가다.

영화 ‘더 킬러’ 속 한 장면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우연히라도 마주치고 싶지 않은 이 사람의 복수 리스트에 오른 사람들이 있다. 킬러의 은신처까지 찾아와 그의 여자친구를 해친 이들이다. 킬러는 얼마 전 자신이 실패한 임무의 의뢰인이 한 짓으로 보고 추적에 나선다.

그의 추적극은 암살자들을 태워준 택시 기사를 찾는 데서부터 시작한다. 도미니카 공화국과 미국 플로리다, 뉴욕 등지를 누비며 관련 인물을 하나씩 제거해간다.

이 과정에 자비나 동정심은 개입하지 않는다. 청부업자가 죽여야 할 사람에게서 연민이나 사랑을 느낀다는 클리셰를 정확하게 비껴간다. ‘더 킬러’ 속 킬러는 죽여야 할 사람은 예외 없이 반드시 죽인다.

영화는 그가 왜 킬러가 됐고 무엇을 목적으로 이 일을 하는지에도 관심이 없다. 러닝타임은 그가 타깃을 추격하고, 잡고, 죽이는 장면들로만 채웠다. 인물 간 대화도 찾아보기 어렵다. 대부분의 대사는 킬러가 속으로 하는 긴 독백이다.

핀처 감독은 스타일리시한 연출로 자칫 늘어질 수 있는 이야기를 지루할 틈 없게 만든다. 빠른 전개와 현실감 있는 액션 장면, 감각적인 오리지널 사운드트랙(OST)이 어우러졌다.

차가운 킬러처럼 절제도 할 줄 안다. 단조로움은 피하되 지나치게 폭주하지도 않는다. 핀처 감독의 대표작이자 비교적 최근작인 ‘조디악'(2007), ‘나를 찾아줘'(2014) 등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25일 극장 개봉. 11월 10일 넷플릭스 공개. 118분. 15세 이상 관람가.

영화 ‘더 킬러’ 속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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