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 70년, 피란수도 부산] ㉛ 피란민 주린 배 달래준 구포국수

일제강점기 밀 집산지로 유명한 구포동…해방 이후 제분·제면공장 들어서
‘저렴한 가격에 쫄깃한 식감’ 피란민 사이서 입소문 타고 전국적 명성

 

국수 뽑아내는 구포동 제면 공장

[부산 북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부산=연합뉴스) 박성제 기자 = 6·25전쟁으로 부산에 떠밀려 오다시피한 피란민들은 식량 부족으로 항상 굶주려 있었다.

당시 서민들의 주린 배를 저렴한 가격으로 따뜻하게 채워주는 음식이 있었으니, 바로 구포국수다.

구포시장서 국수 먹는 모습

[부산 북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28일 부산 북구에 따르면 현재 북구에 있는 구포동은 일제강점기 당시 밀 집산지로 유명했다.

해방 이후에는 이를 기반으로 사업을 하려는 사람이 몰리면서 인근에 제분·제면 공장이 잇따라 들어섰다.

기록을 보면 1950년대 구포에 사는 기업인 오명구 씨가 남선곡산주식회사를 설립해 제분, 제면 공장을 차린 게 시작이었다.

5층짜리 건물을 새로 지어 공장을 가동했는데, 당시로선 밀가루 생산을 자동화하는 최신 시설이었다고 한다.

공장 준공을 기념하는 낙성식에는 주민 수백명이 몰려 구경하기도 했는데, 공장에서는 이들에게 떡을 나눠주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이후에는 구포 출신 유용술 씨가 이곳에 영남제분회사를 설립해 기존의 남선곡산과 함께 제분업계에 두각을 나타냈다.

전국적으로 유명세 떨친 구포 국수

[부산 북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당시 구포시장에 가면 공장에서 뽑아낸 국수를 널어 말리는 풍경을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이렇게 말린 국수는 구포에 살던 아주머니들이 상자에 넣은 뒤 머리에 이고 부산 시내 곳곳으로 공급했다.

[부산 북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구포국수가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게 된 계기는 피란민들의 굶주린 배를 채우면서부터다.

값이 싸고 맛 좋은 국수는 이들의 주린 배를 달래주었다.

특히 다른 지역과 달리 국수를 삶으면 약간 짠듯하면서도 쫄깃쫄깃한 식감이 있어 더욱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는 면발을 널어 말리는 과정에서 바다와 낙동강에서 불어오는 염분을 함유해 습한 바람 때문이라고 알려진다.

한국전쟁 이후 구포국수 먹는 피란민

[부산 북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구포국수가 지금처럼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는 업계 갈등도 있었다.

1988년 한 국수 공장 주인이 구포국수를 단독으로 상표 등록을 하면서 다른 업자에게는 구포국수 명칭을 쓰지 못하도록 해 소송이 벌어졌다.

재판부는 이때 구포국수는 구포의 명물로, 역사성이 있는 상품이기 때문에 단독 소유할 수 없다는 판결을 했다.

한국전쟁 이후 구포국수 먹는 피란민

[부산 북구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이후에도 구포국수의 전통성을 확보하고 존립 여건을 강화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됐다.

구포국수 업계는 2012년 ‘구포국수 영농조합법인’을 설립했고 2014년에는 구포국수 지리적표시단체표장 상표등록을 완료했다.

북구 관계자는 “지리적표시단체표장 등록 이후 구포 이외 지역에서 생산된 국수가 구포국수로 유통되는 것을 차단하고 있다”며 “쫄깃하고 맛있는 구포국수를 맛보고 직접 명성을 확인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psj19@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