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슈퍼히어로 출연 시키려던 마블, 이·팔 전쟁에 골머리

내년 개봉 캡틴 아메리카 차기작 합류…원작서 모사드 요원으로 등장

“아랍 국가서 논쟁적 캐릭터…중동 분쟁 악화시킬 수 있어”

이스라엘 슈퍼히어로 캐릭터 사브라(오른쪽)로 캐스팅된 시라 하스(왼쪽)
[엑스(X) 캡처.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임지우 기자 = 내년 개봉 예정인 ‘캡틴 아메리카’ 차기작 영화에 이스라엘인 슈퍼히어로 캐릭터를 등장시키려던 미국 마블 스튜디오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전쟁으로 곤란한 입장에 처하게 됐다고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가 지난 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해 마블 스튜디오는 2024년 개봉 예정인 영화 ‘캡틴 아메리카: 뉴 월드 오더’에 이스라엘인 여성 슈퍼히어로 ‘사브라'(Sabra)가 새로 합류하며 해당 역할로 이스라엘인 배우 시라 하스가 캐스팅됐다고 밝혔다.

사브라의 합류 소식은 발표 직후부터 팔레스타인과 아랍권 국가들 사이에서 비난의 대상이 됐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의 원작 만화 마블 코믹스에서 사브라가 이스라엘의 정보기관 모사드에서 활동하는 정보 요원으로 등장하는 데다 팔레스타인과 아랍계 국가에 적대적인 인물로 그려지기 때문이다.

또 사브라라는 이름이 1982년 레바논에서 팔레스타인인과 이슬람교도 민간인이 최소 800명 가량 희생된 ‘사브라 샤틸라 학살’을 연상시킨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이 와중에 최근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으로 뿌리 깊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 세계적인 논쟁거리로 떠오른 상황은 마블의 고민을 더 깊어지게 만들 수 있다고 뉴스위크는 전했다.

디팩 사르마 케이스웨스턴리저브 대학 예술과학대 교수는 뉴스위크에 “현재 중동의 민족주의와 독립 국가 문제의 복잡성을 고려했을 때 사브라라는 인물 자체로 팔레스타인인, 아랍인, 이슬람교도와 그 지지자들에게 모욕적이라고 느껴질 수 있다”며 “현재의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분쟁은 이러한 긴장을 상당히 고조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 배우 시라 하스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1980년 마블 코믹스 만화 ‘디 인크레더블 헐크’에서 처음 등장하는 사브라는 유대교와 이스라엘의 상징인 푸른색 다윗의 별이 그려진 의상을 입고 나온다.

그는 첫 등장 장면에서 아랍 무장 단체를 돕는다고 오해한 헐크와 격투를 벌이며, 이후로도 꾸준히 아랍 캐릭터와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로 나온다.

1995년 출간된 ‘뉴 워리어스’에서는 사브라의 아들이 테러리스트들의 공격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그가 팔레스타인을 싫어한다는 설정이 추가되기도 했다.

미국의 성우이자 사회활동가인 일라이자 슈나이더는 “마블 영화가 지닌 광범위한 파급력을 생각했을 때 이스라엘 정보 요원이자 테러리스트에 반대하는 슈퍼히어로를 부각하는 것은 잠재적으로 (일부 국가들에) 모욕적일 수 있고 더 심한 의견의 대립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며 “이는 마치 마블과 미국이 이스라엘의 정책을 지지하고 강화하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에 마블이 영화에서 사브라를 원작 만화 속 설정을 바꿔 새로운 입체적인 인물로 그려낼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마블은 2021년 영화 ‘블랙 위도우’에서 러시아 공산주의자 슈퍼히어로인 ‘레드 가디언’을 원작과 달리 코믹하고 친근한 캐릭터로 그려내며 원작 만화에 담겨있던 러시아에 대한 선입견을 없애려 하기도 했다.

슈나이더는 마블이 사브라에도 비슷한 시도를 할 수 있다며 “어쩌면 이번이 이 캐릭터를 분쟁의 양쪽 입장으로부터 삶과 사랑을 경험하는 인물로 바꿀 기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뉴스위크는 이 내용에 대해 디즈니 측에 답변을 얻기 위해 연락을 취해 놓은 상태라고 전했다.

wisefoo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