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피투성이 연인’ 감독 “평범한 커플 최대한 밀어붙여 봤죠”

“아이 낳아도 경단녀 안 되는 사회라면 이런 영화 나올 수 있을까”

유지영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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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유지영(39) 감독은 30대 중반쯤 되던 무렵부터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가 되는 것과 창작을 계속하는 걸 양립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한다.

선배 여성 감독들이 결혼하면 한동안 창작을 못 하거나 아예 활동을 접는 걸 보면서 하게 된 고민이었다. 당시 결혼까지 바라보는 남자친구가 있었던 유 감독에겐 현실로 다가온 문제였다.

결국 남자친구를 떠나보낸 유 감독은 젊은 여성 작가가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되면서 겪는 일을 그린 ‘버스'(Birth·출산)라는 제목의 영화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다.

평소 존경하던 고(故) 정미경 작가의 단편소설 ‘나의 피투성이 연인’에서도 영감을 받았다. 유 감독은 제목도 이 소설을 따르기로 하고 정 작가의 남편 김병종 화백의 허락을 받았다.

그렇게 탄생한 영화가 오는 15일 개봉하는 ‘나의 피투성이 연인’이다. 결혼은 하지 않고 동거하는 커플인 신인 작가 재이(한해인 분)와 학원 강사 건우(이한주)가 예상치 못한 임신으로 파국을 맞게 되는 이야기다.

“재이의 직업을 소설가로 설정하긴 했지만, 제가 당시 했던 고민이 거의 다 투영된 자전적 이야기라고 할 수 있어요.”

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유 감독은 이 영화를 이렇게 소개했다.

유 감독이 재이에게 자신을 투영했다는 점에서 자전적이지만, 그렇다고 그의 경험을 그대로 옮겨 놓은 건 아니다.

유 감독은 “재이의 임신부터는 거의 다 픽션”이라며 “(여기서부터) 평범한 커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는 게 목표 가운데 하나였다. 괴로울 정도로 밀어붙여 보려고 했다”고 털어놨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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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재이는 창작을 계속할 수 없을 거라고 걱정하고, 건우는 생계를 위해 안정적인 소득원을 마련하려고 학원 원장(오만석)의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둘의 관계에 점점 금이 간다.

여기엔 유 감독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질문이 담겨 있다. 그는 “서른이나 마흔에 아이를 낳아도 경단녀(경력 단절 여성)가 되지 않고 창작이든 뭐든 계속할 수 있는 사회라면 과연 이런 영화가 나올 수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이어 “재이는 아이를 낳으면 더는 글을 못 쓸 거라고 생각하고, 건우는 자기가 자리를 잡지 못하면 가정이 무너질 거란 책임감에 짓눌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임신과 출산의 문제를 다뤘단 점에서 페미니즘의 시각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유 감독은 “작품을 통해 어떤 메시지를 내세워 사회에 영향을 미쳐야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제가 했던 고민이나 동시대의 모습이 작품에 담겨 있기 때문에 (페미니즘과 같은) 그런 의제들이 들어가 있을 수는 있다”며 “관객들이 다각도로 봐주시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유 감독이 ‘수성못'(2018)에 이어 내놓은 두 번째 장편이다. ‘수성못’은 서울 지역 대학 편입을 준비하던 아르바이트생이 대구 수성못에서 발생한 실종 사건에 휘말리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유 감독은 “‘수성못’이 우왕좌왕, 갈팡질팡했던 저의 20대를 돌아보면서 ‘으이그’ 하는 마음으로 만들었다면, ‘나의 피투성이 연인’은 30대를 돌아보면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유 감독은 차기작에 관한 질문엔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독립영화 제작 현실이 열악해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는 “주변을 보면 다 만들어놓고도 개봉을 못 하는 독립영화가 너무 많다”며 “(차기작에 관해 말하지 않는 건) 다음 작품으로 인사드릴 수 있을지도 아직 모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의 피투성이 연인’의 한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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