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시선으로 담아낸 마음 시린 사람들의 이야기…지난 3일 넷플릭스 공개
평범한 캐릭터들에게도 찾아오는 마음의 병…사랑 대신 약물·상담으로 치료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부잣집에서 태어난 오리나는 딸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해주려는 열성적인 어머니 아래서 우아한 백조처럼 자랐다. 예쁘장한 외모에 좋은 학벌, 판사 남편까지. 주변에서는 “너처럼 살면 소원이 없겠다”며 그를 동경하지만,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그는 미치도록 불행하다.
바에서 만난 남성을 스토킹하다가 접근금지 가처분 명령을 받고, 옷을 벗어 던지고 춤을 추는 등 비정상적인 행동을 반복하다가 정신 병동에 입원하게 된 오리나는 양극성 장애를 진단받는다.
오리나를 환자로 맡게 된 간호사 정다은(박보영 분)은 그가 아픈 이유를 이해하지 못한다. “도대체 뭐가 부족해서 아픈 거래요?”라고 묻는 다은에게 같은 병원 정신과 의사인 황여환(장률)은 이렇게 답한다.
“뭔가를 넘치게 가졌다고 해서 정신병에 안 걸리나? 반대로 뭐가 부족하면 정신병에 걸리고? 정신과는 마음의 면역력이 떨어지면 오는 데야. 뼈 부러지면 정형외과 가고, 감기 걸리면 내과 가는 거 하고 똑같아. 누구나 언제든 약해질 수 있는 거니까.”
지난 3일 공개된 넷플릭스 새 시리즈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와요'(이하 ‘정신병동에도’)는 정신병 질환이 있는 주인공들과 그를 둘러싼 인물들을 예전 작품보다 진일보한 모습으로 다루며 호평받고 있다.
“다양한 정신질환을 누구든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적인 연출과 대사로 친절하게 묘사했다”, “환자를 타자화하지 않는 세심한 연출이 돋보인다”, “정신병은 나랑 전혀 상관 없다고 생각했는데, 마음을 점검해보는 시간이 됐다”, “자극적인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따뜻한 위로가 되어주는 작품은 오랜만이다” 등의 시청평이 나온다.
기존에도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하는 드라마는 여럿 있었다.
‘괜찮아 사랑이야'(2014)는 정신과 의사 지해수(공효진)와 조현병 환자 장재열(조인성)의 로맨스를 그렸고, ‘사이코지만 괜찮아'(2020)도 정신 병동 보호사 문강태(김수현)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조증, 우울증 등을 묘사했다. ‘영혼 수선공'(2020)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이시준(신하균)이 신체증상장애 환자, 과대망상증 환자 등을 만나 치료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세 드라마 모두 정신 질환은 위험하거나 숨겨야 할 병이 아니라 치료를 통해 극복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정신병동에도’는 누구나 마음의 병을 앓게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며 차별화했다.
끔찍한 사고를 목격하거나 어릴 적 학대를 당하는 것처럼 극적인 계기가 아니더라도 정신 질환은 감기처럼 언제든 찾아올 수 있는 병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그래서 이 드라마 속 환자들은 주변에서 볼 법한 평범한 인물이다.
망상증 환자 김수완은 공무원 시험 준비생이었다. 남들이 스펙 쌓을 시간에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그는 자연스레 취업 시장에서 밀려났지만, 밥 먹을 시간까지 아껴가며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다. 아까운 점수 차이로 몇 년째 탈락을 거듭하던 그는 다시 도전할 용기를 잃고, 대신 게임 속 세계로 도피한다.
우울증으로 가성치매 증상까지 나타난 권주영은 중학교 2학년 딸을 둔 워킹맘이다.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최선을 다하지만, 늘 부족한 엄마인 것만 같다는 죄책감이 그를 따라다닌다. 아이의 행복 때문에 본인 행복에는 눈감고 산 지 오래인 권주영은 본인이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다.
좋은 대학교를 졸업해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대기업을 다니다가 퇴사한 송유찬(장동윤)은 공황 장애가 있다. 끊임없이 쌓이는 업무에 중압감을 느끼다가 어느 순간 공황 발작이 왔다. 물에서 허우적대며 당장 죽을 것만 같은 공포감이 덮친 이후로 회사만 가면 물이 차오르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주인공이 정신병에 걸리고, 그 병을 극복해내는 과정도 현실적이다.
밝고 따뜻한 성격의 간호사 정다은(박보영)은 매 순간 환자들에게 마음을 다한다. 그러나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는 그 성격 때문에 정작 본인의 행복을 챙기는 법을 잊어버리고, 충격적인 사건을 겪고 나서는 심각한 우울증에 걸리게 된다.
아픈 다은은 잠을 많이 자고, 누워있는 시간이 길지만,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다. 의학 전문 지식이 없는 다은의 엄마는 다은이 찻길로 돌진하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서야 딸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사랑으로 마음의 병을 극복해낸 여느 드라마 속 주인공들과 달리 우울증에 걸린 다은은 약물과 상담 치료에 의존한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신의 힘들고 아픈 모습을 보이고 싶어 하지 않아 하고, 다은을 좋아하는 동고윤은 그런 다은의 마음을 헤아린다.
우울증에 걸린 다은도, 병원만 옮겨 다니고 상태가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던 사회 불안 장애 환자 김성식도 단번에 좋아지지는 않는다. 더디다 싶을 정도로 잔잔하게 회복하고, 퇴원하고 나서도 두려움에 갇힌다. 드라마는 길고 어두웠던 새벽을 지나 아침을 맞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을 꽤 섬세하게 그려낸다.
정신 질환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다루는데, 이를 날카롭게 꼬집기보다는 우리도 언제든지 정신병 환자나 보호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반복해서 보여주며 병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우리 모두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에 서 있는 경계인들이다”라는 대사가 극 전체를 관통하며 시청자들의 마음에 울림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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