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아버지가 너 놀고먹는다고 난리야. 안 되면 식당 주방일 배우라니까 그렇게 알아.”
만년 취업준비생 석민(백서빈 분)에게 부모님의 최후통첩이 날아든다. 풀이 죽은 그는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니가 놓고 간 봉투 속 천 원짜리 다발을 보는 그의 표정에 절망이 묻어난다.
그런 그도 생기를 찾는 시간이 있으니, 바로 집 근처 공원에 갈 때다. 이 공원에는 예쁘지만 독특한 젊은 여자 나은(신연서)이 있다. 숟가락이 꽂힌 헬멧을 쓴 채 가부좌를 튼 그는 자신이 우주의 다른 별에서 왔다고 생각한다.
나은은 행성과 끊임없이 교신을 시도하고 외계 문자를 받아적는다. 지구를 떠나 자기 별로 돌아가는 게 그의 목표다.
나은에게 반한 석민은 이런 얼토당토않은 말을 믿어준다. 자신 역시 어릴 적 괴물을 본 적이 있다고 고백하면서 둘은 점차 가까워진다. 어느 날 우주에서 날아든 그녀와 지구인 석민은 서로 사랑하는 사이가 될 수 있을까.
구상범 감독의 영화 ‘어느 날 그녀가 우주에서’는 ‘탈(脫) 지구 로맨스’를 표방한 작품이다. 두 사람이 조심스레 서로에게 다가가고 마음을 여는 모습은 지구인인 우리와 별다를 게 없다.
그러나 극이 전개될수록 이들의 사랑은 과정일 뿐 진짜 주제는 상처의 치유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다.
나은은 가장 안전한 자기 방에 누워서도 불안한 듯 몸을 떤다. 자신에게 다가오는 남자들에게 스프레이를 뿌려 파출소를 드나들기 일쑤다.
나은이 대학 시절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가 그렇게도 가고 싶어 하는 행성이 어딘지 드러나면서 영화의 장르는 코미디에서 드라마로 바뀐다.
마냥 철없고 무능력해 보이는 석민도 아픔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편의점에 들렀다가 우연히 군대 선임을 마주친 뒤 그는 공황에 시달린다.
비슷한 상처를 가진 두 사람은 어느새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위로가 된다.
나은을 향한 감정이 사랑으로 발전한 석민은 그를 지구에 붙잡아두기 위해 기상천외한 쇼도 준비한다. 이 유치하고 허술한 연기 덕에 나은은 비로소 무거운 짐을 벗어 던질 수 있게 된다.
구 감독은 장편 데뷔작인 이 영화를 통해 “사랑과 자비로 상처를 치유하고, 폭력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됐으면 하는 염원을 전하고자 했다”면서 “조금이나마 위로와 희망을 주는 영화가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이 영화는 한국 작품으로는 처음으로 휴스턴국제영화제 장편 로맨틱 코미디 부문 백금상을 가져갔다. 백서빈은 같은 영화제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며 연기력을 인정받았다.
22일 개봉. 103분. 12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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