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연합뉴스) 김주환 기자 = 매년 11월, 대학수학능력시험에 맞춰 막을 올리는 국제 게임 전시회 지스타(G-STAR)는 내년도 국내 게임 업계의 경향을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대부분의 기업이 지스타에서 연말 혹은 내년에 출시할 신작 게임을 일반 이용자에게 처음 공개하는 자리가 바로 지스타이기 때문이다.
올해 지스타에서는 모바일 중심의 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MMORPG) 또는 수집형 게임이 대세를 이뤘던 과거와 달리 다양한 플랫폼과 장르로 이용자에게 새로운 재미를 주려는 게임 업계의 노력이 엿보였다.
주요 게임사들의 전시작을 지스타 부스 또는 사전 행사에서 체험해 보았다.
◇ 엔씨·크래프톤[259960], 게임성 강조한 신작 돋보여…완성도가 숙제
지스타에 8년 만에 부스를 내고 참가한 엔씨소프트[036570]의 시연 작품 중 가장 규모가 큰 게임은 ‘LLL’이다.
‘LLL’은 넓은 맵을 탐험하며 총기로 적을 물리치는 슈팅 게임의 요소와 아이템을 수집해 캐릭터를 육성하는 역할수행게임(RPG)의 게임성을 결합한 게임이다.
차갑고 건조한 느낌을 주는 특유의 아트 스타일과 미래적인 장비 디자인, 실제 사진과 흡사할 정도의 고품질 그래픽이 인상 깊었다.
괴물 종족 ‘오크’에게 점령당한 서울 코엑스(COEX) 일대의 모습은 정말 폐허가 된 서울 한복판을 탐험하는 것과 같은 몰입감을 선사한다.
다만 아직 개발이 초기고 타이틀명도 확정하지 않은 단계인 만큼, 전투 밸런스나 조작감·유저 인터페이스(UI) 면에서는 많은 개선이 필요해 보였다.
크래프톤이 선보인 ‘다크 앤 다커 모바일’은 올해 지스타에서 게임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크게 주목받은 작품이다.
미공개 프로젝트 무단 반출 논란으로 넥슨과 법정 분쟁을 벌이고 있는 아이언메이스의 ‘다크 앤 다커’ 모바일 판권을 크래프톤이 사와 신작 모바일 게임 이름에 붙였기 때문이다.
직접 플레이해본 ‘다크 앤 다커 모바일’은 원작의 게임성과 분위기를 충실히 계승한 작품이다.
‘다크 앤 다커’는 PC 환경에서 하기에는 다소 모션이 뻣뻣하고 그래픽도 결코 좋다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하지만 크래프톤의 ‘다크 앤 다커 모바일’은 모바일 플랫폼인 만큼 이런 점이 크게 부각되지 않으며 오히려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어 보였다. 시연 기기는 삼성 갤럭시 S23 울트라였는데, 끊김이 없이 부드러운 동작을 보여줬다.
‘다크 앤 다커 모바일’ 만큼 부스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못했지만, 크래프톤이 지스타에서 선보인 또 다른 작품 ‘인조이(inZOI)’도 숨은 다크호스다.
‘인조이’는 실제 사람처럼 다양한 성격과 욕구를 가지고 생활하는 다양한 아바타 ‘조이’들을 조작해 다른 ‘조이’ 들과 관계를 맺고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는 게임이다.
모티브가 된 일렉트로닉 아츠(EA)의 ‘심즈’ 시리즈와 달리 직접 WASD 키로 ‘조이’를 조종하거나 스마트폰 형태의 메신저로 소통할 수 있는 점이 인상 깊었다.
캐릭터가 명령을 제대로 듣지 않거나 캐릭터끼리 겹치는 등, 완성까지 긴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였으나 잠재력은 상당히 커 보였다.
◇ 2024년도 서브컬처 게임 강세 계속…새로운 인기작 나올까
2020년대 이후 대세로 떠오른 서브컬처(일본 애니메이션풍) 게임도 지스타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었다.
서브컬처 게임의 특징은 캐릭터의 강한 개성이다. 마음에 드는 설정과 외형을 가진 캐릭터에 애착을 가지고 시간과 열정을 쏟는 이들이 서브컬처 게임의 인기를 이끄는 추동력이다.
엔씨소프트의 수집형 역할수행게임(RPG) ‘프로젝트 BSS’는 직접 서브컬처를 표방하지는 않았지만, 캐릭터 수집을 강조한 게임성과 전반적인 아트 스타일이 서브컬처 게임과 맞닿아 있었다.
‘BSS’에는 엔씨소프트의 지식재산(IP) ‘블레이드&소울’의 캐릭터와 세계관을 모티브로 한 60여 종의 캐릭터가 등장한다.
플레이어는 이 중 5명의 캐릭터를 골라 팀을 구성하고, 조종하는 캐릭터를 시시각각으로 변경하며 싸울 수 있다.
각각의 캐릭터의 기술은 연계 효과가 뚜렷하기에 재사용 대기 시간이 끝날 때마다 캐릭터를 바꿔 줘야 했는데, 딱히 전략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실시간 전투로 퀘스트를 진행하다가 갑자기 턴제 전투가 펼쳐지는 요소도 시연에 참여한 이들 대부분이 당황스럽게 느꼈다.
넷마블[251270]이 출품한 ‘데미스 리본’과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도 캐릭터를 강조한 서브컬처 장르에 속한다.
‘데미스 리본’은 넷마블에프앤씨의 종합 서브컬처 프로젝트인 ‘그랜드크로스’를 구성하는 한 작품으로 기획됐다.
캐릭터의 3D 조형이나 전투 시의 연출은 충분히 합격점이라 할 만했다. 스토리 영상도 한 편의 애니메이션을 보는 것처럼 몰입감이 높았다.
플레이어가 직접 캐릭터를 조작해 육각형 타일로 구성된 월드 맵을 탐험하는 요소도 소소한 재미를 준다.
다만 이런 특징들은 기존에 나온 서브컬처 수집형 역할수행게임(RPG)도 가지고 있는 만큼, 새로운 경험을 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혁신적인 요소는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만든 게임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에 더 많이 담겨 있었다.
‘일곱 개의 대죄: 오리진’은 원작에 등장하는 캐릭터 4종을 조종해 방대한 필드를 돌아다니며 임무를 수행하고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역할수행게임(RPG)이다.
전반적인 그래픽 스타일과 아이템 수집, 비행, 암벽등반 등이 들어간 게임성은 호요버스의 ‘원신’을 강하게 의식한 듯 보였다. 시연 공간과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원신 같다”는 반응이 자주 나왔다.
개성 있는 캐릭터들과 생동감 있는 성우들의 연기도 볼거리다. 원작 만화를 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시연 버전에서는 많은 콘텐츠가 잠겨 있었지만, 적절한 수익모델을 가지고 완성도 있게 나온다면 내년 넷마블의 실적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 여전히 강한 모바일 MMORPG…화려한 그래픽 눈길
대작 모바일 MMORPG도 여전히 지스타에서 강세를 보였다.
메인 스폰서이자 위메이드[112040]가 출품한 북유럽풍의 MMORPG ‘레전드 오브 이미르’가 대표적이다.
‘이미르’는 북유럽 신화의 등장인물에서 따온 이름이지만, 위메이드의 대표작인 무협풍 MMORPG ‘미르’ 시리즈의 게임성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로도 읽힌다.
‘이미르’의 볼거리는 언리얼 엔진 5를 사용한 화려한 그래픽이다. 모바일을 염두에 두고 개발됐으나 PC 버전에서 플레이하더라도 손색이 없었다.
물론 게임성은 자동 전투가 중심인 전형적인 한국형 MMORPG다. 비슷한 게임을 많이 해 본 사람이라면 굳이 조작법 설명을 읽지 않아도 바로 적응할 수 있다.
넷마블의 ‘RF 온라인 넥스트’도 마찬가지로 자동 전투 위주의 MMORPG로, 2004년 출시돼 지난 9월까지 서비스된 ‘RF 온라인’을 계승하는 작품이다.
‘RF 온라인 넥스트’는 로봇과 총기, 기계 갑옷 ‘슈트’가 등장하는 공상과학(SF) 세계관을 배경으로 3개 국가의 대립을 소재로 하고 있다.
역시 자동 전투를 지원하는 게임인데, ‘RF 온라인’에 향수를 가진 30대 이상의 게이머를 고객으로 포섭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스테이지마다 몰려오는 적을 처치하고 이로운 효과를 주는 카드를 골라 캐릭터를 강화하는 ‘이벤트 모드’는 특이했지만, 실제 게임플레이에 어떻게 적용될지는 가늠하기 어려웠다.
앞선 두 게임과 지향점은 크게 다르지만, 스마일게이트RPG의 ‘로스트아크 모바일’도 장르는 MMORPG로 분류된다.
이번 지스타에서 최초로 일반에 공개된 ‘로스트아크 모바일’ 시연 버전에서는 원작 ‘로스트아크’ 초반부에 나오는 ‘영광의 벽’ 공성전을 체험할 수 있었다.
‘로스트아크 모바일’에만 있는 캐릭터인 ‘소드마스터’로 플레이해 보았는데, 원작 게임 특유의 화려한 액션과 수동 조작의 손맛이 살아 있었다.
시연 기기는 아이폰이었는데, 화려한 연출에도 불구하고 끊김이 없는 플레이가 가능했다. 부스 한켠에서는 PC 클라이언트도 체험할 수 있었다.
‘로스트아크 모바일’의 가상현실(VR) 버전도 이번 지스타에서 최초로 공개됐다. 시연 공간에서는 ‘메타 퀘스트 프로’로 ‘로스트아크’ 속 여러 장면을 가상현실로 체험할 수 있었다.
스마일게이트는 향후 VR 콘텐츠를 실제 게임과 연동해 게임 캐릭터를 꾸미거나 친구들과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는 플랫폼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로스트아크 모바일’은 올해 지스타에서 최고 인기작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스마일게이트에 따르면 첫날인 16일에만 6천500명 이상이 B2C 부스를 방문했고, 이튿날에는 개장 후 10분만에 약 1천 명이 시연 공간에 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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