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작가 데뷔작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서울=연합뉴스) 이은정 기자 = ▲ 겨울을 지나가다 = 조해진 지음.
정연은 췌장암으로 투병 중인 엄마의 잠든 모습을 보며 생각한다. “사람의 몸은 시간이 담긴 그릇 같다고.”
엄마의 일흔한살 평생을 채운 순간을 속속들이 알지도 못하는데, 엄마는 끝내 세상을 떠난다. 두 달 남짓 엄마를 돌보고 임종을 지킨 정연은 “엄마를 회피한 날이 더, 더 많았다”는 생각이 맴돈다.
정연은 엄마의 집에 내려가 엄마의 물건을 사용하고 엄마가 운영하던 식당 문을 열어 칼국수를 만든다.
소설은 엄마를 떠나보낸 뒤 홀로 남겨진 딸이 엄마를 온몸으로 이해하며 일어서는 과정을 그린다. 조해진 작가가 2년만에 펴낸 신작으로, 필연적으로 작별을 겪게 될 세상 모든 엄마와 딸에게 건네는 위로 같다.
이야기는 밤이 연중 가장 긴 날인 ‘동지'(冬至)와 가장 추운 시기인 ‘대한'(大寒), 날씨가 풀려 초목이 싹 트는 ‘우수'(雨水)에 이르기까지 겨울이란 통로를 지나며 전개된다.
정연은 녹은 눈과 얼음이 기화해 구름의 일부가 되고 다시 비로 내리듯이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없었다”며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을 계절을 통과하며 배운다.
작가는 “겨울은 춥고 때때로 우리의 마음을 황량하게 하지만 (중략) 그 통로 끝은 어둡지 않다”며 “세상은 다시 순환과 반복이라는 레일 위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니까”라고 말한다.
작가정신. 140쪽.
▲ 모리스 씨의 눈부신 일생 = 앤 그리핀 지음. 허진 옮김.
84세인 모리스 해니건은 아일랜드 더블린 근교의 호텔 바에 홀로 앉아 자신에게 특별했던 다섯 사람의 기억을 끄집어낸다.
이 하룻밤 독백은 아들 케빈을 향해 이야기하는 형식을 띠는데, 마치 한 편의 모놀로그 연극 같다.
그는 흑맥주와 위스키를 번갈아 마시며 형 토니, 사산된 딸 몰리, 처제 노린, 아들 케빈, 아내 세이디를 위해 건배사를 한다.
평생 감정을 표현하지 않고 무던해 보였던 그는 감춰왔던 사건들을 꺼내며 뒤틀린 면모도 드러낸다. 열등감, 분노, 슬픔, 사랑, 그리움 등 복잡다단한 내면의 이야기는 평범해 보이는 인생도 들여다보면 절대 밋밋하지 않다는 깨달음을 준다.
아일랜드 소설가 앤 그리핀이 2019년 출간한 데뷔작으로 국내에 처음 소개됐다. 이 작품에서 침착하고 부드러운 서사, 단단한 이야기 구조를 보여준 그는 아일랜드 북어워드 올해의 신인상을 받았다.
복복서가. 32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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