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건으로 묶인 연쇄살인 ‘비밀’·손녀 유해 찾는 할머니 ‘물비늘’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죽음의 이면에 숨겨진 실체를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을 내세운 한국 스릴러 영화 두 편이 올겨울 잇따라 관객을 찾는다.
분위기와 매력은 각각 다르지만, 집요한 추적으로 진실에 다가가고 그 과정에서 묵직한 주제를 던진다는 점은 닮은꼴이다.
◇ 말 한마디에 눈덩이처럼 커지는 비극…김정현이 형사역을 맡은 ‘비밀’
다음 달 8일 개봉하는 임경호·소준범 감독의 ‘비밀’은 한 살인 사건의 수사를 맡은 형사 동근(김정현 분)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는 피해 남성의 입 안에서 의미심장한 문구가 적힌 쪽지 뭉치를 발견한 뒤 사건이 예사롭지 않음을 느낀다.
동근은 쪽지의 주인이 누구인지부터 조사하고, 10년 전 피해자와 함께 군에서 복무했던 영훈의 것임을 알게 된다. 하지만 영훈은 이미 세상을 떠난 상태다. 복무 당시 선임들의 괴롭힘을 못 이겨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범인이 누구인지 미궁에 빠지려는 찰나에 두 번째 살인 사건이 발생한다. 이번에도 피해자의 입속에는 영훈의 다른 쪽지가 들어 있다.
동근은 연쇄살인 사건과 영훈의 죽음 사이에 연결고리가 있다고 확신한다. 수사 과정에서 영훈이 실은 자신과 중학교 동창이었다는 사실도 파악한다. 평소 냉철한 성격의 동근이지만, 옛 친구의 고통을 꼬리 물듯 접하면서 점차 이성을 잃는다.
평범한 추적극으로 시작한 영화는 영훈이 겪은 끔찍한 일들을 차례로 보여주며 집단의 낙인찍기가 얼마나 큰 파국을 불러오는지를 말한다. 그 낙인찍기는 누군가가 대수롭지 않게 뱉은 말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임 감독은 “기억에서 잊힐 만큼의 사소한 말과 행동일지라도 가볍게 여기지 않았으면 한다. 이 영화로 이야기하고 싶었던 건 결국은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비밀’은 주제 의식이 강한 영화이긴 하지만 장르적 재미도 놓치지 않는다. 동근의 발자취는 추리물을 보는 듯한 재미가 있고, 나중에 밝혀지는 범인의 정체도 뒤통수를 친다.
◇ 그가 건지려는 건 진실인가 죄책감인가…김자영 연기 빛난 ‘물비늘’
다음 달 6일 극장에 걸리는 임승현 감독의 ‘물비늘’은 평범하디 평범한 할머니 예분(김자영)이 주인공이다.
그는 날마다 강에 들어가 탐지기를 이용해 무언가를 찾는다. 1년 전 리프팅을 하다 실종된 손녀 수정의 유해와 유품이다.
알코올 중독이던 예분은 수정이 죽던 날도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한 할머니와 싸운 뒤 친구를 만나러 간 수정은 다시는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
예분은 수정의 엄마인 딸과도 연락을 끊은 채 강에서 살다시피 한다. 필사적으로 조그마한 단서라도 찾으려는 그를, 마을 사람들 모두 안타깝게 여긴다.
하지만 수정의 절친한 친구 지윤(홍예서)은 이런 그를 외면한다. 그날 수정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면서도 무엇 때문인지 좀처럼 예분에게 이를 털어놓지 않는다.
어린 수정의 삶은 벼랑 끝에 몰린 상황이다. 아버지는 빚쟁이를 피해 도망 다니고 할머니는 얼마 전 세상을 떠났다. 당장 그를 보호해줄 사람도, 머무를 집도 없다.
영화는 지윤의 고백이 나오는 후반부까지 미스터리를 유지한다. 예상과는 달리 수정의 죽음에는 어마어마한 비밀이 숨겨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같은 아픔을 지닌 예분과 수정이 서로를 보듬고 의지하는 모습을 보면, 두 사람이 왜 그토록 죄책감에 시달려왔는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임 감독은 “지윤과 예분 모두 수정의 죽음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면서 “두 캐릭터의 동력은 수정을 잃은 상실과 죄의식이라고 생각하고 시나리오를 썼다”고 설명했다.
독립영화계를 대표하는 중견 배우 김자영은 이번에도 훌륭한 연기로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허무함과 광기, 죄스러움, 분노 등 다양한 감정을 담은 표정 연기가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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