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예술의전당 공연…메시앙부터 베토벤까지 광범위한 레퍼토리
(서울=연합뉴스) 강애란 기자 = 반짝이는 초미니 드레스에 아찔한 높이의 하이힐.
’21세기 건반 여제’로 불리는 중국 피아니스트 유자왕의 리사이틀이 열린 지난 25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객석은 공연 전부터 들뜬 분위기였다.
유자왕의 파격적인 패션은 보수적인 클래식 음악계에서 화제와 논란을 넘어 ‘아이콘’으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유자 왕은 의상에 대해 “그저 내가 좋아하는 방식대로 옷을 입을 뿐”이라고 답변한 바 있다.
유자왕이 ‘어떤 옷을 입고 나올지’에 대한 호기심이 그의 공연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요소란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이날 1부에서 옆구리가 깊게 파인 은색 드레스, 2부에서 몸매를 드러내는 하얀 롱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나온 유자왕은 등장만으로 시선을 사로잡았다.
피아노 앞에 앉은 유자왕은 패션만큼 인상적인 자신만의 연주로 관객들을 매료시켰다.
광범위한 레퍼토리를 자랑하는 유자왕은 이날 연주할 프로그램을 사전에 일부만 공개했다. 그는 뉴욕타임스를 통해 “나는 모든 프로그램이 고유의 생명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굳게 믿고 있고, 현재 내가 어떻게 느끼는지를 표현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프로그램은 마치 시대를 거꾸로 되짚어가는 여정 같았다.
1부는 20세기 프랑스 작곡가 메시앙의 ‘아기 예수를 바라보는 스무 개의 시선’ 중 15번 ‘아기 예수의 입맞춤’과 10번 ‘성령의 기쁨의 시선’으로 시작했다. 이어 19세기와 20세기 경계에서 독창적인 음악 세계를 구축한 러시아 작곡가 스크랴빈의 피아노 소나타 7번 ‘하얀 미사’와 프랑스 인상주의 작곡가가 드뷔시의 ‘기쁨의 섬’을 연주했다.
유자왕은 공연장에서 자주 연주되지 않는 낯선 곡들로 채워진 1부를 화려한 테크닉으로 소개했다. 특히 메시앙의 곡에서는 중간중간 솟구쳐 나오는 강렬한 타건과 휘몰아치는 속주가 유자왕의 넘치는 개성을 잘 보여줬다. 복잡해 보이는 리듬 구조를 능숙하게 다루는 여유도 돋보였다.
2부에서는 비교적 친숙한 곡인 쇼팽의 발라드 4번과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번을 들려줬다. 1부에서 불협화음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현대음악의 묘미를 한껏 드러냈다면, 2부는 테크닉보다도 곡 자체가 지닌 아름다움을 최대치로 끌어내는 데 집중하는 느낌을 줬다.
앙코르로는 총 3곡을 선사했다. 지난해 인천에서 열린 리사이틀에서 앙코르곡으로 18곡을 선사한 적이 있어 앙코르에 기대를 가진 관객들도 있었지만, 다채로운 선곡으로 그 기대감을 채웠다. 보통 클래식 공연의 앙코르는 1∼2곡 정도로 3곡 자체도 많은 편이다.
유자왕의 리사이틀은 26일 대구콘서트하우스, 28일 부산문화회관에서도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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