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복장으로 눈길 사로잡는 드랙 퀸…”나를 기다리고 있던 역할”
‘원더걸스’ 선예 통해 렌트 처음 접해…”아들 보는 기분이라더라”
(서울=연합뉴스) 최주성 기자 = “저는 특별한 사람이라서 엔젤 역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무나 맡을 수 없는 역할을 맡았다는 자부심도 크죠.”
굽 있는 구두를 신고, 조명을 달아 반짝이는 치마를 입은 채 피클 통을 두드리는 거리의 드러머.
지난 11일 개막한 뮤지컬 ‘렌트’에서 엔젤은 누구보다 존재감이 두드러지는 캐릭터다. 의복으로 성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여장남자 ‘드랙 퀸'(drag queen)이라는 설정부터 남다르다. 자신감 넘치는 성격으로 친구들에게 활력을 불어넣으며 주목받는 인물이기도 하다.
가수 겸 배우 조권(34)의 말처럼 엔젤은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배역이다. 그러나 그는 엔젤 역을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충만했다.
24일 공연장인 서울 코엑스 아티움에서 만난 그는 “‘렌트’의 오디션 공고를 보자마자 내 시간이 왔다고 생각했다”며 “엔젤 역으로 무대에 오르면 슈퍼 히어로가 된 것처럼 기분이 좋지 않을까 기대했다. 어쩌면 엔젤이라는 역할이 미리 나를 기다리고 있던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조권은 이전부터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 엔젤이 어울리는 배우로 꼽혀왔다. 2008년 그룹 ‘2AM’으로 데뷔한 조권은 숱한 음악방송과 예능에서 끼를 뽐냈다. 2013년 뮤지컬 배우 활동을 시작한 뒤로 ‘프리실라’와 ‘제이미’에서 드랙 퀸을 연기한 경험도 있었다.
그 역시도 본인의 끼와 재능으로 엔젤이라는 역할을 빛나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혹여 드랙 퀸만 연기한다는 이미지가 굳어질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자신의 재능은 누구도 바꿀 수는 없다는 생각으로 출연을 결심했다.
“되든 안 되든 오디션부터 제 진짜 모습과 존재감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무릎 근처까지 오는 ‘은갈치’ 디자인의 구두로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오디션장에 들어갔죠.”
렌트는 조권이 처음으로 알게 된 뮤지컬 작품이기도 했다. 걸그룹 ‘원더걸스’ 출신 선예가 2002년 렌트를 관람하고 그에게 공연을 소개한 것이 계기였다. 선예가 엔젤로 출연한 배우 김호영을 보고 조권에게 엔젤 역을 추천하는 일도 있었다.
그는 “당시는 JYP 연습생 시절이라 공연을 보지는 못했지만, 선예가 부르는 렌트의 노래를 워낙 많이 들어 마치 제가 공연하는 느낌이 들었다”며 “얼마전 선예가 제 공연을 보고 아들을 보는 기분이었다는 평을 남겼다. 선예는 저를 보며 뿌듯하고 흐뭇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2020년 김호영의 엔젤 연기를 처음 본 조권은 감히 저 작품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20년 넘게 엔젤로 출연해 온 선배 김호영에게 인정받는 순간에는 영광스러운 마음에 눈물을 흘렸다.
조권은 “호영이 형이 제 리허설하는 모습을 말없이 보더니 ‘권아, 넌 진짜 특별하다’라고 말해주는데 정말 기뻤다”며 “호영이 형이 할아버지 목소리로 22년째 엔젤 역할을 맡고 있다고 말하며 장난을 치곤 한다. 나도 호영이 형을 따라 그런 장난을 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밝혔다.
선배 김호영도 인정한 조권의 연기는 캐릭터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나온다. 조권은 작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대본에 드러나지 않는 캐릭터의 내면을 파악하려 노력했다. 엔젤은 강도에게 습격당한 행인을 기꺼이 도와주는 등 주변에 사랑을 베푸는 인물이지만, 그의 남모르는 슬픔이나 아픔을 생각하는 과정도 거쳤다.
그는 “엔젤의 과거는 모르지만 어려서 놀림을 많이 당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 역시도 자라면서 별종이라고 불리거나, 여성스럽다며 따돌림을 당하기도 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엔젤의 삶에서 와닿는 부분이 많았다”고 돌아봤다.
이어 “엔젤은 먼저 자신을 사랑해야 주변에 사랑을 베풀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다. 캐릭터를 연기하는 저도 감히 저런 사랑을 따라할 수 있을까 늘 배운다”고 덧붙였다.
함께 출연하는 배우들과의 관계도 돈독해 특별한 감정으로 작품에 임하고 있다. 연습 과정에서 배우들은 저마다의 마음속 슬픔을 나누며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조권은 “모두가 눈물을 흘리는 뮤지컬 연습은 ‘렌트’가 처음이었다”며 “대사 암기보다 사랑이라는 주제 의식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공연을 보고 눈물 흘리는 관객분들을 보면 함께 감정을 나눈 듯한 인상을 받는다”고 말했다.
조권은 한국에서 배우로 살아가는 한 엔젤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한다. 스트레스보다 설렘이 더 크게 느껴지는 공연은 렌트가 처음이라고 한다. 엔젤을 연기하는 배우는 6∼7㎝ 높이의 구두를 신지만, 조권은 12㎝ 구두를 신을 정도로 열정도 크다.
“무대에서 제가 가진 생동감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뮤지컬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렌트는 사랑의 힘이 대단한 작품이라 더욱 에너지가 생기죠. 매일매일 기분 좋은 설렘과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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