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현 짝사랑하는 천재 소리꾼 역…”대견하다고 말해주고파”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곱디고운 외모에 마음을 울리는 목소리를 가진 조선 최고 소리꾼 량음의 얼굴에는 늘 짙은 애수의 그림자가 어리어 있다.
어릴 적부터 함께 팔도를 누볐던 의형제 이장현(남궁민 분)을 깊이 연모하지만, 그 마음을 들키는 순간 그의 곁을 떠나야 하기에 늘 한 발짝 물러나 홀로 속앓이를 할 뿐이다.
MBC 사극 ‘연인’ 속 량음의 외사랑은 보는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지만, 정작 량음을 연기한 배우 김윤우(23)는 “량음에게 짠하게 느꼈던 순간은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돌려받지 못할 마음인데도 대가를 바라지 않고 사랑하는 량음을 김윤우는 “멋있다”고 표현했다.
최근 서울 종로구 수송동 연합뉴스 본사에서 만난 김윤우는 “누군가를 그렇게 연모하고, 상대를 위해 희생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닌데 량음이는 묵묵히 잘 해냈다”며 “그런 량음에게 대견하다고 말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촬영하면서 흔들릴까 봐 시청자 반응을 일부러 찾아보지 않았는데, 다들 량음이를 짠하게 여긴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고 놀랐어요. 사실 어떤 말이나 행동을 취하면서 자기 자신을 짠하고, 불쌍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그래서 이런 반응을 예상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웃음)”
량음이 알던 이장현은 삶의 목적이나 소명 따위는 진지한 유생들이나 논할 일이라며 자신은 그저 쉬엄쉬엄 인생을 살다 가겠다고 말하는 사내였다.
그러나 길채(안은진)를 만난 후부터 그는 달라진다. 량음은 처음 보는 표정을 짓는 이장현이 낯설고, 여자를 위해 제 목숨마저 내놓으려는 그가 걱정된다. 이장현을 자꾸만 위험에 빠트리는 여자를 그에게서 때놓으려고 한다.
김윤우는 “시청자들이 보기에는 둘을 갈라놓으려는 량음이의 행동이 얄밉고, 짜증 나는 순간도 있으셨겠지만, 저는 그런 량음이 너무 이해됐다”고 말했다.
그는 “량음의 선택은 다 장현을 위한 선택이었다”며 “길채와 엮일수록 자꾸만 다치고 아파하는 장현을 위해 행동한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장현이 진심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고 짚었다.
김윤우는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으로 량음이 생사가 오가는 이장현 곁을 지키며 오열하는 장면을 꼽았다.
길채를 지키려다가 황녀가 쏜 화살에 맞은 이장현은 사경을 헤매는데, 김윤우는 “겉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량음이 유일하게 목 놓아 울었던 장면”이라고 설명했다.
“마음을 들키는 순간 영영 이장현을 못 보게 될 거라는 생각에 량음은 늘 감정을 꽁꽁 감추며 살았던 사람이에요. 이장현은 량음이 자신을 연모한다는 사실을 끝까지 몰랐을 겁니다. 확신해요.”
원체 말수도 적고, 겉으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연기하는 배우 입장에서는 특히 어려웠던 작업이라고 한다.
김윤우는 “이장현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되, 그게 너무 과해 보이지는 않도록 선을 잘 타려고 노력했다”며 “특히 디테일을 살리는 데 공을 많이 들였다”고 말했다.
“량음의 마음을 표현할 수 있는 창구는 눈빛이었던 것 같아요. 장현의 말에 따라 변하는 표정과 시선 처리 등 미세한 움직임을 많이 담으려고 했어요.”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이장현은 숙청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량음은 이장현의 옷을 입고 그를 대신해 죽으려고 하지만 계획에 실패하고, 결국 옥에 갇힌다.
김윤우는 “본방송에는 담기지 않았지만, 대본상 량음은 이장현을 위해 죽으려다가 기절 당하고, 그를 쫓다가 돌아온 병사들에게 붙잡혀 대신 옥에 갇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백발이 된 모습에 놀라셨을 수도 있는데, 그만큼 량음이 이장현을 걱정하다가 마음이 약해진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했다”며 “이장현이 기억을 되찾으면 량음에게 또 돌아올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량음은 옥에서 나오더라도 이장현의 곁에 머무르지는 않을 것 같다. 한번 보내주기로 마음먹은 만큼, 그의 곁을 떠나 자신만의 길을 걸어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첫 지상파 주연작에서 배우들 사이에서도 어렵기로 손꼽히는 사극 연기에 도전해 호평을 끌어낸 김윤우는 2021년 넷플릭스 영화 ‘새콤달콤’으로 데뷔한 3년 차 신인 배우다.
오디션을 통해 량음 역에 캐스팅된 김윤우는 “주연 캐릭터 중 가장 마지막에 캐스팅됐다”며 “캐스팅되고 한참 뒤에 감독님께 들었는데, ‘량음이를 애타게 찾고 있었는데 제 발로 걸어들어와서 고마웠다’고 말씀해주셨다”고 수줍게 웃어 보였다.
1년이라는 긴 촬영을 마친 김윤우는 잠시 재정비의 시간을 가질 예정이라고 한다.
그는 “‘연인’은 저라는 배우를 대중에 제대로 알린 첫 시작이었던 것 같다”며 “첫 시작이 잘 된 만큼, 더 좋은 모습으로 성장해서 다음 작품을 준비하는 게 되려 예의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럴 때일수록 조급해지고 싶지 않았어요. 량음이를 벗어내고 또 다른 옷을 입었을 때 량음이 생각이 안 나게끔 하려면 많이 준비해야 할 것 같아요. 제 연기, 선배님들의 연기를 모니터하면서 세세한 부분을 다시 잡고 좋은 작품을 찾아 나서겠습니다. 좋은 기회인 만큼 천천히, 신중하게 행동하려고요.”
고등학교 때 배우라는 직업을 처음 선택했다는 김윤우는 “저라는 사람을 바꿔보고 싶어서 배우가 됐다”고 돌아봤다.
그는 “원래 많이 내향적인 성격이었다”며 “이런 모습을 좀 바꿔보고 싶어서 연기에 도전하게 됐는데, 해보니 일이 적성에 잘 맞고, 힘든 만큼 재밌다”고 했다.
목표하는 배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중요할 것 같으냐고 묻자 김윤우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많은 감정이 전달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내면의 깊이를 기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끌어올릴 감정이 많은, 깊이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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