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명한 미국 신경과학자가 쓴 과학책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두툼한 두께, 안에 담긴 엄청난 정보 탓에 읽기 전부터 독자를 질리게 하는 책들이 있다. 하지만 그런 도서 중에 조금씩 읽어 나가다 보면 금세 지적으로 압도당하는 느낌을 주는 그런 ‘벽돌책’들도 있다. 로버트 M. 새폴스키 미국 스탠퍼드대 의과대 신경학과 교수가 쓴 ‘행동'(원제: Behave)이 그러한 유형의 책이다.
19세기에 찰스 다윈은 진화론을 거론하며 파란을 일으켰다. 인류는 신의 자녀에서 침팬지·오랑우탄과 동급으로 전락했다. 20세기에 리처드 도킨스는 유전자를 언급하며 과학계에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의 신분은 또 한차례 낮아졌다. 우리를 조종하는 주체는 유전자이고, 인간은 그저 유전자를 위한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는 게 도킨스의 설명이었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새폴스키는 다윈의 진화와 도킨스의 유전자 논의를 이어받아 논지를 전개했다. 단, ‘맥락’에 맞춰서다. 그가 강조하는 건 사회적, 환경적, 문화적 ‘맥락’이다.
책에 따르면 유전자의 영향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고, 호르몬은 우리가 믿는 가치에 따라 우리를 착하게도 나쁘게도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은 이기적으로도, 이타적으로 진화하지 않았다. 다만 특정 조건에서 특정 방식으로 행동하도록 진화했다. 저자는 “맥락, 맥락, 맥락이 전부”라고 강조한다.
특히 인간의 모든 행동을 총괄하는 뇌는 “유전자의 영향을 최소로 받고, 경험의 영향을 최대로 받도록 진화했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나아가 “유전자가 무언가를 단독으로 결정하는 것은 없다”고까지 말한다.
아울러 아동기가 개인의 삶에 미치는 영향은 절대적이라고 강조한다. 아동기의 역경은 “DNA에서 문화까지 모든 것에 흉터를 남길 수 있고, 그 영향이 평생 갈 수 있으며, 심지어 여러 세대에 미칠 수도 있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다만 “그런 영향을 줄이는 건 가능하고, 우리가 과거에 생각했던 정도보다 더 많이 가능하다. 하지만 개입이 늦어질수록 되돌리기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저자는 우리 본성의 잔인함, 희소한 이타성이라는 양면성의 비밀을 파헤치고자 책을 기획했다고 한다. 그는 이를 위해 신경생물학, 유전학, 뇌과학, 사회생물학, 심리학 등 다양한 학문분과를 가로지르며 다채로운 논의를 전개한다. 책의 결론은 우리가 뭔가 근사한 행동을 할 때도, 끔찍한 행동을 할 때도 “훈련, 노력, 의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옳은 일을 한다는 것은 늘 맥락 의존적 명제”라고 말한다.
집필에만 10년이 걸렸다는 이 책은 미국 언론 ‘워싱턴 포스트’ 올해의 책에 선정되고, LA타임스 도서상을 받았다.
문학동네. 김명남 옮김. 10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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