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서와 화합으로 만들어 간 ‘탕평’…영조와 정조가 꿈꾼 소통

국립중앙박물관, 영조 즉위 300주년 기념 ‘탕탕평평’ 8일 개막

영조의 시 적힌 ‘삽살개’ 그림 첫 공개…18세기 궁중 서화 한눈에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두루 사귀고 치우치지 않음은 군자의 공정한 마음이요, 치우치고 두루 사귀지 않음은 바로 소인의 사사로운 생각이다.”(周而弗比乃君子之公心比而弗周寔小人之私意)

1742년 3월 영조(재위 1724∼1776)는 직접 글을 쓰고 비석을 세우라 명했다.

당시 왕세자였던 사도세자의 성균관 입학을 앞두고, 성균관 유생 가운데 이른바 당색이 다른 사람은 참석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진 탓이었다.

유생들을 불러 훈계한 영조는 ‘탕평'(蕩平)의 뜻을 새겨 후대에서도 기억하도록 했다. 싸움이나 논쟁에서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세상, 그가 굳은 의지로 걸어간 길이었다.

영조와 정조(재위 1776∼1800), 두 왕이 꿈꾼 ‘탕평한 세상’에 주목한 전시가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영조 즉위 300주년을 맞아 18세기 궁중 서화를 다룬 특별전 ‘탕탕평평(蕩蕩平平)-글과 그림의 힘’을 선보인다고 7일 밝혔다.

오는 8일 개막하는 전시는 영조와 정조가 쓴 어필(御筆·임금이 쓴 글씨)을 비롯해 국보 1건, 보물 11건 등 총 54건 88점의 유물을 한자리에 모았다.

전시는 두 왕이 탕평을 이루고자 글과 그림을 활용한 방법에 주목한다.

문신 송인명, 박사수 등이 1728년 이인좌의 난을 진압한 뒤 관련 자료를 모아 펴낸 ‘감란록'(勘亂錄)은 반란의 근본 원인을 붕당으로 돌린 점이 눈에 띈다.

박물관 관계자는 “자신의 국정 운영 방침을 널리 알리고자 서적을 간행한 일은 이전에는 없던 새로운 소통 방식”이라며 “영조는 한글로 풀어쓴 언해본도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화가 김두량(1696∼1763)이 그린 ‘삽살개’는 특히 주목할 만하다.

털이 복슬복슬한 삽살개가 고개를 들고 사납게 짖고 있는 그림 옆에는 탕평을 따르지 않은 채 반대하는 신하들을 향한 영조의 날 선 비판이 시구로 남아있다.

“사립문을 밤에 지키는 것이 네가 맡은 임무이거늘 어찌하여 길에서 대낮에 이렇게 짖고 있느냐.”(柴門夜直是爾之任如何途上晝亦若此)

그동안 책이나 자료로 소개되었던 그림은 이번 전시에서 처음 일반에 공개된다.

이와 함께 영조의 탕평책을 뒷받침한 박문수(1691∼1756)의 38세와 60세 초상화, 김홍도(1745∼1806 이후)가 정조에게 바친 ‘주부자 시의도'(朱夫子詩意圖), 탕평비 탑본 등이 전시된다.

전시에서는 왕이 신하들과 맺은 ‘끈끈한’ 관계도 엿볼 수 있다.

정조가 ‘정성을 다해 죽기로 맹세해 다른 마음을 품지 않았다’고 평가한 정민시(1745∼1800)가 전라도 관찰사로 부임할 때 써준 시, 은밀하게 자기 뜻을 전한 편지 등이 대표적이다.

왕도를 바로 세워 탕평을 이루고자 한 정조의 의지는 기념비적 행사를 통해 드러난다.

1795년 정조가 수원 화성을 다녀온 여정을 8폭 그림으로 표현한 ‘화성원행도'(華城園幸圖)는 왕을 중심으로 신하들이 질서를 이루고 백성은 편안해하는 이상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박물관은 ‘탕평’이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신경을 썼다.

관람객들은 드라마 ‘옷소매 붉은 끝동’에서 영조 역을 맡았던 배우 이덕화가 재능 기부로 참여한 음성 설명을 들을 수 있다. 10세 이상 어린이를 위한 별도 음성 안내도 준비돼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영조와 정조의 고민이 담긴 전시품을 보면서 서화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동시에 글과 그림이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생각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시는 내년 3월 10일까지 열린다. 이달 8일부터 17일까지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ye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