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라이어 케리 “음악이 곧 삶이자 계획…나에 대한 믿음이 중요”

자기 이름 딴 회고록 출간…상처 입은 가족사·어린 시절 공개

“우리 가족에게 난 가발 쓴 현금인출기였다”

머라이어 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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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나에게는 음악이 곧 삶이었다. 늘 음악만이 유일한 계획이었다.”

팝 디바 머라이어 케리가 자신의 이름을 딴 첫 회고록을 출간했다.

케리는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1990∼2000년대 ‘러브 테이크스 타임'(Love Takes Time), ‘히어로'(Hero), ‘이모션스'(Emotions), ‘원 스위트 데이'(One Sweet Day), ‘위 빌롱 투게더'(We Belong Together) 등의 메가 히트곡을 남긴 팝스타다.

그는 셀린 디옹, 휘트니 휴스턴과 함께 이른바 세계 3대 디바로 불리며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1위곡을 19개나 배출했다.

특히 역사상 가장 성공한 캐럴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올 아이 원트 포 크리스마스 이즈 유'(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를 불러 ‘크리스마스의 여왕’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곡은 케리가 직접 작사·작곡에 참여한 곡으로, 발매 이후 30년 가까이 됐어도 연말만 되면 세계 주요 차트 최상위권을 차지하는 명곡으로 자리매김했다.

케리는 회고록에서 이 같은 찬란한 커리어 이면에 있던 음울했던 과거를 숨김 없이 드러냈다.

흑인 아버지와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케리는 ‘혼혈’이라는 정체성 때문에 고민을 거듭했고, 이에 따른 차별을 겪어야 했다.

케리는 “‘너 검둥이지!'(라는 말이) 내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자 머리가 빙빙 돌기 시작했다”며 “나에게 손가락질하고 있었다. 나의 비밀, 나의 치욕이었다. 나는 얼어붙었다”고 되돌아봤다.

그를 둘러싼 가족 또한 그에게 큰 상처가 됐다. 회고록에는 사랑과 지지보다는 정서적 학대와 일탈을 거듭하는 가족들의 모습이 가감 없이 묘사됐다.

케리는 “나는 우리 가족에게 내가 ‘가발을 쓴 ATM(현금인출기)’이었음을 오랫동안 알고 있었다”며 “나는 가족에게, 특히 어머니에게 무척 많은 돈을 주었지만 그래도 충분하지 않았다. 가족은 나를 무너뜨려 완전히 통제하려고 했다”고 적었다.

또 “우리 가족은 내가 불안정한 상태임을 입증할 수 있으면 나의 대리인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며 “상담사는 나에게 가족을 객관적으로 보라고 했다”고 털어놨다.

머라이어 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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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 탈출구이고 안식처였다. 케리는 자신의 인생 여정에서 음악이 희망이자 든든한 동반자라고 고백했다.

그는 “나는 어렸을 때 항상 겁에 질려 있었고, 음악만이 탈출구였다”며 “숨죽인 채 부르는 노래는 나에게 들려주는 비밀스러운 자장가였다”고 회고했다.

또 “나는 어렸을 때부터 견뎌 내기 위해, 살아남기 위해 ‘환하게 빛나는 빛이 내 안에 있어’라는 말에 종종 의지했다”라고도 했다.

케리는 자기 말처럼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친 슈퍼스타가 됐다. 그는 “결국, 그리고 처음에도 중요한 것은 나에 대한 믿음”이라며 자기 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면서도 “내 가족과도 같은 팬들에게 정말로 표현할 말이 없지만 노력해 보겠다”며 “우리의 관계가 얼마나 진짜인지 많은 사람이 이해하지 못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그 무엇보다 ‘가장’ 진짜다. 여러분은 몇 번이고 내 인생을 구해줬다”며 팬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책에선 1993년 12월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의 잊지 못할 공연,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다가 문득 떠오른 ‘클로즈 마이 아이즈'(Close My Eyes) 후렴구, 소니뮤직 CEO(최고경영자) 토미 머톨라와의 결혼 생활 등 디바의 내밀한 에피소드도 엿볼 수 있다.

1998년 휘트니 휴스턴과 무대에 오른 한 시상식에서 드레스가 제때 도착하지 않아 경찰이 길을 터줘 가며 가까스로 의상을 구해온 일 같은 여담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머라이어 케리·미카엘라 앤절라 데이비스 지음. 사람의집. 허진 옮김. 56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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