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축·건물지 발굴조사 결과 보고회…참외형 주전자 조각 등도 출토
(서산=연합뉴스) 정윤덕 기자 = 일본에 있다가 절도범에 의해 국내로 들어온 고려시대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유권을 놓고 일본과 기나긴 소송을 벌였던 충남 서산 부석사가 늦어도 고려시대 전기에 창건됐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5일 서산시에 따르면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의 흔적을 찾기 위해 추정 사역 범위 3만3천480㎡를 조사한 결과 31m 규모의 석축과 건물지 2곳을 발굴했다.
참외형 주전자편(靑磁瓜形注子片)과 청자상감 모란무늬 병편(靑磁象嵌忍冬文甁片), 만(卍)자와 공(公)자가 새겨진 기와편 등도 출토됐다.
이들 유구와 유물 등을 분석한 결과 서산 부석사가 늦어도 고려시대 전기에는 창건된 것으로 확인됐다.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은 금동관음보살좌상이 ‘서주에 있는 사찰에 봉안하려고 제작했다’고 결연문에 적혀 있는 시기인 1330년경에는 대규모 공사를 통해 부석사 사세가 확장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수덕사 근역성보박물관에 보관돼있는 ‘부석사 동종'(1669년 제작) 등은 조선시대부터 현재까지 변함없이 사찰의 역사가 이어져 왔음을 뒷받침한다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는 금동관음보살좌상 소송에서 제기됐던 ‘고려시대 서주 부석사와 현재 서산 부석사의 동일성·연속성’을 확인하기 위해 시작됐다.
구상 부시장은 “서산 부석사의 실체적 역사를 확인하는 조사였다”며 “조사 성과가 금동불상 환수 염원의 토대가 돼 지역사 회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낙중 충남역사문화연구원장은 “대법원의 법률적 판단과 별개로 약탈이나 분실 등 어떤 이유로든 해외로 나간 우리 문화재에 대한 조사나 환수 관련 문화 운동은 계속돼야 한다”며 “앞으로도 이와 관련해 지속적인 조사 연구를 이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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