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울한 시대 배경에 크리처물의 장르적 재미…’경성크리처’

넷플릭스, 22일 총 10부작 중 7부작 먼저 공개

초반 흡인력은 부족하지만, 뒤로 갈수록 서사 힘 얻어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1945년 3월 말 경성. 동경대공습 이후로 일본은 패전의 그늘이 짙어졌고, 조선은 아침이 오기 전 가장 어두운 새벽을 견뎌내고 있다.

드디어 일본이 망할 수도 있다는 희망으로 조용히 동요하는 조선에는 목숨 걸고 독립운동에 투신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태어나서 일본 없는 조선은 본 적이 없었다며 제 살길 찾느라 급급한 이들도 있다.

경성 최고의 자산가이자 전당포 금옥당의 대주인 장태상(박서준 분)은 후자에 속한다.

태어나보니 식민지였고, 아버지 없는 자식이었다는 장태상은 생존을 위해 자신만의 방식으로 치열하게 살아왔다. 애국이니 정의니 하는 것보다 오로지 돈을 우선시하며 사업을 일궜고, 그 덕에 자수성가했다.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사람들은 돈에 집착하는 그를 보며 손가락질하지만, 그러든 말든 간에 장태상은 난세 속에서 그저 무탈하게, 끈질기게 살아낼 생각만 할 뿐이다.

오는 22일 파트1을 공개하는 넷플릭스 새 시리즈 ‘경성크리처’는 생존하기 위해 사투를 벌였던 젊은 청춘들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다. 주인공들은 시대적 아픔을 대변하는 캐릭터라기보다는, 실제 그 시대를 살았을 법한 인물들로 그려진다.

“살아남는 것에 진심”인 장태상, 어머니를 찾겠다는 목표 하나를 위해 모든 것을 내던진 윤채옥(한소희), 친일하는 아버지 몰래 독립운동을 하는 청년 권준택(위하준) 등 시대를 살아가는 개성 뚜렷한 인물들이 이야기를 끌어간다.

드라마 ‘가족끼리 왜 이래’, ‘낭만닥터 김사부’ 시리즈 등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작품을 써온 강은경 작가는 크리처 장르라는 새로운 도전에서도 자신의 장기를 잘 구현했다.

드라마 매 회차 부제목에는 ‘경계’라는 단어가 등장한다. 작가는 선과 악, 고통과 환멸, 집념과 집착 등 여러 경계에 놓인 이들을 등장시키며 ‘어떻게 사는 게 인간으로서 잘 살아가는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경성크리처’는 제목에서부터 대놓고 크리처물을 표방하지만, 괴물을 등장시켜 극적인 긴장감을 자아내기까지의 전개를 서두르지는 않는다. 극초반을 등장인물들의 서사를 풀어내는 데 할애한 탓에 초반에는 이야기가 늘어진다고 느껴질 수도 있다.

자신은 무서울 것도, 거칠 것도 없다며 떵떵거리던 장태상은 실종된 애첩 명자를 찾아내지 않으면 모든 것을 빼앗겠다는 이시카와 경무관의 협박에 조선인으로서의 한계를 뼈아프게 체감한다.

모든 정보통을 동원했지만, 아무런 단서를 찾지 못해 애를 태우던 중 죽은 사람도 찾아낸다는 전문 토두꾼(실종자들을 찾는 사람) 윤채옥 부녀를 만나고, 각자의 사정으로 손을 잡게 된 이들은 모든 의심이 향하는 옹성병원에 잠입한다.

음습한 분위기의 옹성병원을 배경으로 드라마는 광활한 공간에서 휘몰아치는 공포감 대신 밀폐된 공간에서 서서히 조여오는 긴장감을 택했다.

넷플릭스 ‘경성 크리처’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주인공들이 총알도 거뜬히 튕겨내는 괴물, 그리고 괴물보다 더 괴물 같은 일본군들을 상대로 극렬한 사투를 벌이면서부터 그동안 쌓아온 서사는 힘을 발하기 시작한다.

첫 만남에서부터 서로의 목에 칼과 총을 겨누던 두 남녀가 고난 속 점차 서로에게 의지하게 되고,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은 뻔할지언정 익숙한 재미를 자아낸다.

각자의 목표에 매몰됐던 이들이 서로를 통해 점차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되며 남을 위하는 사람으로 성장하는 과정도 입체적으로 그려진다.

드라마는 어두운 시대를 배경으로 하지만, 이를 무겁게만 그려내지는 않는다.

연출을 맡은 정동윤 감독은 피가 난무하는 와중에도 강약 조절을 통해 장르극 마니아가 아닌 일반 시청자도 장르극과 드라마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배려했고, 박서준은 특유의 능청스러운 연기로 적재적소에서 웃음을 자아내며 극의 호흡을 조율해낸다.

넷플릭스 ‘경성크리처’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무엇보다 마루타 생체 실험으로 탄생한 괴물이 관전 포인트다.

쥐의 머릿속에 들어간 기생충이 포식자를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는 설정에서부터 출발해 만들어졌다는 ‘경성크리처’ 속 괴물은 시각특수효과(VFX)를 통해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쉰다.

몸체를 키워가며 진화하면서도 인간이었을 때의 기억을 아직 잃지 않은 괴물이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에서 어떤 역할을 해낼지 기대를 모은다.

총 10부작으로 제작됐으며 오는 22일 파트1을 통해 7부작을 먼저 공개한다.

coup@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