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honey] 품격 있는 미식 도시 전주

K컬처 부각으로 전주 미식 ‘주목’

(전주=연합뉴스) 성연재 기자 = K컬처의 부각과 함께 전주가 미식 투어의 메카로 주목받고 있다.

음식을 단순히 관광의 한 요소로 보기보다는 음식을 통해 지역에 대한 이해를 높일 수 있다는 접근법도 필요하다.

음식의 지역적 배경과 특성에 대한 이해가 가미되면 여행의 품격이 한층 더 높아진다.

전북 전주시는 ‘유네스코 음식창의도시’로 선정된 곳이다.

전주시는 지역 특색이 있는 음식 문화를 체계적으로 보존·계승하기 위해 전주 음식 명인과 명가, 명소에 대한 아카이브를 구축해 운영하고 있다.

또 전주 음식의 우수성을 살리기 위해 명인 7인, 명가 5인, 명소 2곳을 지정하고 있다.

◇ 날아갈 듯한 한옥의 선(線)과 향(香)

한옥마을에 포근히 눈이 내린 장면을 상상하며 전주로 향했다.

동화 속의 마을 같은 장면을 기대했지만, 결과적으로 운이 없었다.

완산구의 한옥마을에 도착하니 겨울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비에 젖은 한옥의 기와는 하나하나 이어져 날아갈 듯한 선을 그리고 있다.

한옥의 매력이다.

한 채 한 채가 이어져 한옥마을 전체가 아름다운 선이 됐다.

고풍스러운 찻집[사진/ 성연재 기자]

비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찻집으로 들어섰다.

수십 년 한옥마을에서 이 지역에서 생산된 차를 소개해 온 다원이다.

이곳은 복잡한 한옥마을의 큰 도로에서 벗어난 작은 골목길에 자리 잡은 작은 고택이다.

마당을 가운데 두고 100년 정도 된 본채와 행랑채가 마주하고 있다.

한옥마을이 관광지화하기 전부터 이 자리에서 찻집으로 활용돼 왔다.

비 오는 날의 고택은 특유의 운치가 있다.

대문을 지나니 기와에서 떨어지는 빗물이 보였다.

시각과 청각 모두 상쾌하다.

내부로 들어섰더니 피워놓은 향이 선을 그리며 날아가는 모습이 보인다.

또 다른 선의 발견이다.

낮은 나무 테이블과 두툼한 방석이 무척 정겹다.

이곳은 모악산 자락에서 길러진 차를 직접 수확하고 말려 차를 만든다.

다구 다루는 법 등 차 마시는 과정을 친절히 설명해 줘 다도 체험도 된다.

인기 메뉴라는 황차와 양갱을 하나씩 주문했다.

시골에서 봤던 호롱불이 가장자리에 놓여있는 모습이 고풍스럽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와 함께 황차의 진한 향기가 느껴졌다.

뜨끈한 해장국 [사진/ 성연재 기자]

◇ 맹추위엔 뜨끈한 복어 국물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겨울날에는 뜨끈한 복어 국물 맛이 당긴다.

뜨거운 국물을 후후 불어가며 먹다 보면 추위도 저만큼 사라져 버리고 얼었던 몸도 녹는다.

1976년 문을 연 완산구의 복어 전문 식당으로 들어섰다.

아침 식사를 위해 찾은 식당 앞에는 ‘유네스코 음식창의 업소’ 명패가 붙어있었다.

미나리와 콩나물이 잔뜩 들어간 국물 맛은 두말할 나위 없다.

이 집에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복어 알집인 곤이가 배달된다.

주인아주머니는 “젓가락으로 먹으면 부서지니 꼭 숟가락으로 드시라”고 말하는 친절함을 잊지 않는다.

이 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메뉴는 시래기 해장국이다.

‘백반기행’의 만화가 허영만 씨가 이 집 시래기 해장국을 맛본 뒤 극찬했다는 것은 지역에서는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러나 이 집은 그 방송 이후 다른 취재에는 응하지 않고 있다고 한다.

관광객들이 몰리자 단골들이 피해를 보기 때문이라고 한다. 해장국은 아침 7시 30분부터 오전 11시까지 판다.

또 한 가지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모주였다.

모주는 전북에서만 맛볼 수 있는 주류다.

전주 사람들은 해장을 위해 이 집을 찾는 경우가 많다.

모주는 알코올 도수가 무척이나 약해 술처럼 느껴지지 않을 지경이다.

새콤하게 혀를 자극하는 계피 향 덕분에 마치 수정과를 마시는 느낌이다.

한 단골은 “전날 술을 마신 뒤 이 집을 찾아 모주 한잔을 걸치면서 해장한다”고 설명했다.

◇ 약용 비빔밥과 팔복예술공원

전주 약용 비빔밥[사진/ 성연재 기자]

시내에서 다소 떨어진 팔복동에 있는 식당은 약용 비빔밥이 유명한 곳이다.

전통적인 전주비빔밥에다 대추와 도라지 등 약재를 넣어 개발한 것이다.

‘유네스코 음식창의 명인’으로 지정된 이 집 주인장 김정옥 씨는 1988년부터 이곳에서 전통 비빔밥을 개발해 왔다.

간이 잘 된 육회가 약재와 어우러져 부드럽고도 신선한 맛을 낸다.

이 집에서는 특이하게 ‘홍시 김치’를 만들어 팔고 있었다. 호기심이 일었지만, 다음 기회를 기약하며 일어섰다.

근처에 있는 팔복예술공장을 들러야 했기 때문이다.

팔복예술공장은 1990년대 초반까지 카세트테이프를 생산하던 곳이 문화 예술 플랫폼으로 재탄생한 곳이다.

이곳은 실내외 전시와 카페 등이 있는 A동, 꿈꾸는 예술터와 다목적 야외광장 등이 있는 B동으로 나누어져 있다.

카페로 들어서면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본 것처럼 커다란 인형이 눈에 띈다.

높다란 천장 아래 고객을 내려다보고 있는 3층 높이의 대형 인형은 호기심을 자극한다.

카페 바깥의 다양한 전시 공간에서는 휴식과 문화 그리고 예술을 경험하며 낭만적인 시간을 보낼 수 있다.

전주 물짜장 [사진/ 성연재 기자]

◇ 물짜장에는 짜장이 없다?

전주에는 타지역에 없는 먹거리가 몇 가지 있다.

뜨끈한 국물이 일품인 물짜장은 그 대표적 메뉴다.

덕진구의 전주 객사 맞은편 골목에 있는 식당을 찾았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중국음식점 노포의 느낌이 그대로 묻어났다.

팔각 천장과 팔각 창문 등은 중국 현지에 온 느낌을 전해줬다.

물짜장은 맵지 않은 흰 물짜장과 매운맛의 빨간 물짜장이 있다.

맛을 보니 이름은 짜장이지만, ‘짬뽕과 울면 사이의 그 어떤 맛’이 느껴졌다.

알고 보니 춘장이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이란다.

주인장 아들에게 그 연유를 물어봤으나 신통한 답변을 듣지는 못했다.

요리연구가 백종원 씨가 ‘요리 도중 춘장이 떨어져 만들었거나, 춘장 없이 만들어보고 싶어서 나온 메뉴였을 것’이라는 답을 내놓은 적이 있다.

연유야 어찌 됐든 물짜장은 전북지역에서만 맛볼 수 있는 독특한 먹거리다.

물짜장 이외에도 인상적인 것은 얇은 피가 바싹하게 구워진 탕수육이다.

이 집 탕수육은 ‘찍먹'(찍어 먹을 것인가) ‘부먹'(부어 먹을 것인가) 논란을 사전 차단했다.

처음부터 얇은 소스가 살짝 묻혀 나온다.

새콤달콤한 소스가 바싹하게 구워진 탕수육과 무척이나 잘 어울렸다.

전주 물갈비 [사진/ 성연재 기자]

◇ 양념이 자작자작…물갈비의 매력

전주에는 물짜장 이외에도 갈비에 물을 부어 먹는 ‘물갈비’가 유명하다.

남노송동에 자리 잡고 있는 한 식당은 45년째 물갈비를 팔고 있다.

물갈비는 당면과 아삭아삭한 콩나물이 풍성하게 들어간 갈비 전골 요리다.

당면과 콩나물 아래쪽에는 양념이 된 갈비가 자리 잡고 있다. 불을 조절하면서 익혀 먹는 재미가 있다.

다 익어가면 어느덧 국물이 자작자작해지고, 숨이 죽은 당면과 콩나물이 갈비 맛과 함께 잘 조화된다. 콩나물과 당면부터 먼저 건져 먹으면 되는데 일반 갈비에서 느낄 수 없는 시원하고 깊은 맛이 우러난다.

이 집에는 돼지갈비에 해산물과 콩나물이 가미된 해물 물갈비도 있다.

돼지갈비와 시원한 해산물 국물도 어우러져 이 메뉴를 찾는 단골이 많다.

잘 익은 묵은지를 비법으로 전수돼 오는 양념과 버무려 익혀 먹는 김치전골도 있다.

한옥마을 제과점 [사진/ 성연재 기자]

◇ 전통과 현대의 조화 전주 빵

한옥마을 한가운데 자리한 제과점에서는 베스트셀러인 전병을 맛볼 수 있었다.

음식에 대한 자부심으로 둘째가라면 서러운 고장 전주지만, 서양 음식인 빵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다.

오늘날의 전주 음식 가운데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는 또 다른 하나는 빵이다.

밀가루 반죽이 부풀어 오르면서 풍기는 향내는 오늘도 계속된다. 전주에서 빵이라면 빼놓을 수 없는 곳이 3대를 이어온 제과점이다.

일제강점기 말인 1940년 창업주가 일본인 제과점에서 전병과 제과 기술을 익혀 문을 열었다.

간판도 없이 전병을 만들어 팔던 가게가 제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한국전쟁기인 1951년이다.

전병 이외에 많이 알려진 메뉴는 수제 초코파이다.

초코파이는 원래 한손에 들어올 만큼 크기가 작지만, 이 초코파이는 작은 솥뚜껑만큼이나 크다.

이 집은 특히 미나리와 고추장, 콩나물 등 지역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이 가미된 빵도 많다.

원래 전주 먹거리는 아니지만 재미있는 빵 하나를 발견했다.

공예품전시관에서 만난 작품들[사진/성연재 기자]

최근 경북 경주에서 인기를 끈 ’10원 빵’이 전주에도 상륙한 모습이다.

10원 동전 모양의 빵으로, 보는 재미와 먹는 재미가 있다.

제과점 바로 옆에는 전주시에서 운영하는 전주공예품전시관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서 독특한 소반 하나를 발견했다.

지름 30㎝가량밖에 안 되는데도 옻칠로 한 자태가 무척이나 고급스러웠다.

박강용 전북도 무형문화재 옻칠장의 작품이다.

안시성 전북도 무형문화재 옹기장의 작품인 도기 술병과 잔 하나를 올려놓으면 딱 좋을 정도의 크기였다.

김범석 전북문화관광재단 팀장은 “전주는 미식뿐만 아니라 음식을 담는 공예품도 함께 발전했다”면서 “전북쇼핑트래블라운지 운영 등 미식에 쇼핑을 접목한 쇼핑관광도 활성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 이 기사는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24년 1월호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polpori@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