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라드·록·EDM 넘나들고 K팝 아이돌 신까지 침투
“젊은 세대 겨냥”…기존 팬들은 다양한 장르 접해 ‘환영’
(서울=연합뉴스) 최재서 기자 = “저는 K팝 아이돌로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게 목표입니다.”
신인 아이돌 JD1은 지난해 11월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이렇게 포부를 밝혔다. 화장기 짙은 눈매에 금발로 염색한 머리, 전형적인 K팝 가수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어딘가 익숙하다. JD1은 스스로를 ‘인공지능 아이돌’이라고 부르며 활동하는 트로트 가수 정동원의 부캐(서브 캐릭터)다.
JD1은 지난 11일 신곡 ‘후 엠 아이'(who am I)로 음악방송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고, 유튜브를 통해 Q&A 영상 등 아이돌의 전유물로 알려진 ‘자컨'(자체컨텐츠)을 선보이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임영웅·정동원·영탁…’트로트 세대교체’ 주역들의 장르 다변화
20일 가요계에 따르면 트로트계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불리는 이른바 ‘트롯돌'(트로트+아이돌)들이 과감한 장르 확장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발라드와 록, EDM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고 있으며 정동원처럼 아예 새로운 외피를 입고 K팝 신(scene)에 뛰어드는 이도 생겨났다.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 유행 초기만 해도 타 장르 음악인의 트로트 시장 진출이 눈에 띄게 늘어나는 모습이었으나, 최근에는 그 반대 현상도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매 공연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막강한 팬덤을 누리고 있는 국내 대표 트롯돌 임영웅은 2022년 첫 정규음반 ‘아임 히어로'(IM HERO)부터 본격적인 장르 확장을 꾀했다.
발라드와 팝, 힙합, 포크 등 장르를 정규 1집에 총망라한 임영웅은 당시 기자 간담회에서 “한 장르에만 국한된 가수가 아니라 다채로운 장르를 어색함 없이 보여드릴 수 있으면 한다”고 밝혔다.
특히 그는 지난해 10월 선보인 신곡 ‘두 오어 다이'(Do or Die)에서 아예 K팝 아이돌을 연상케 하는 리듬감 있는 댄스곡으로 영역을 넓혔다.
이 곡은 발매 3시간 만에 국내 최대 음원 플랫폼 멜론 ‘톱 100’ 차트 1위를 기록했고, 현재까지도 20위권 안에 들고 있다.
2018년부터 ‘트로트 신동’으로 이름을 날려온 정동원의 경우 무려 2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올해 부캐 JD1으로 재데뷔했다.
과거 발매한 음반에서도 록이나 발라드 등이 조금씩 실렸지만, K팝 퍼포먼스를 담아 곡을 선보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소속사 쇼플레이엔터테인먼트 측은 “JD1은 정동원이 트로트라는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하기 위해 창작해낸 페르소나”라고 설명했다.
영탁 역시 2022년 발매한 첫 정규음반에서 강렬한 심포니 록에서 트랜디한 디스코 팝에 이르기까지 음악적 역량을 아낌없이 뽐냈다.
작년 발매된 정규 2집에서는 타이틀곡 ‘폼미쳤다’부터가 누디스코(Nu Disco·현대적인 디스코) 장르의 댄스곡이었다.
◇ “젊은 세대 겨냥”…기존 팬들은 다양한 장르 접할 기회
이들이 장르 확장을 시도하는 배경 가운데 하나는 ‘트로트 가수’라는 틀에서 벗어나 보다 많은 대중을 아우르기 위해서라고 볼 수 있다.
임영웅과 정동원, 영탁 등 트롯돌들은 트로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으로 명성을 얻었다는 특징이 있다. 젊은 대중 사이에서는 기성세대의 음악을 하는 가수라는 인식이 강하다.
이러한 환경에서의 장르적 도전은 아티스트로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일 수 있을 뿐 아니라 젊은 세대로 팬층을 넓히는 데도 도움이 된다.
유명 트로트 가수가 소속된 한 기획사의 관계자는 “다양한 장르로 나아가는 건 결국 좀 더 많은 세대를 아우르기 위한 것”이라며 “장르 다변화 이후 콘서트 현장에 30대나 어린 학생들이 많이 보이기 시작했다”고 강조했다.
특히 실용음악과 출신인 임영웅의 경우 특유의 정박 창법으로 여러 장르를 무리 없이 소화하는데, 이 같은 ‘이지 리스닝'(듣기 편한 음악) 음악이 대중을 광범위하게 끌어들이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유입된 기존 트로트 팬들의 입장에서도 아티스트의 자유로운 장르 활용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김헌식 대중음악 평론가는 “연령대가 높을수록 접하게 되는 음악적 장르가 다양하지 못하다”며 “임영웅이나 정동원이 트로트에 익숙한 기성세대에게 새로운 음악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생소한 장르의 음악을 내놓더라도 목소리 자체가 익숙한 만큼 팬들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인다는 설명이다.
김헌식 평론가는 “테일러 스위프트도 컨트리 음악을 시작으로 다양한 장르적 확장을 통해 슈퍼스타가 된 사례”라며 “국내 트로트 가수들도 비슷한 흐름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본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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