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감한 연출에 독립영화 감성 가미…이솜·안재홍 주연
(서울=연합뉴스) 오명언 기자 = 섹스리스 부부 우진(이솜 분)과 사무엘(안재홍)에게도 한 때는 누구보다 뜨겁던 시절이 있었다.
불같은 여자 우진과 물 같은 남자 사무엘은 7년 전 한 인디 밴드 공연장에서 처음 만났다. 사무엘은 우진이 그간 만나온 남자들과는 달랐다. 순하고 착하기만 한 모습이 처음에는 그다지 끌리지 않았는데, 저돌적으로 애정 공세를 퍼붓는 그를 믿고 결국 결혼까지 골인했다.
뜨겁던 부부 관계는 어느 순간 식어버린다. 이유를 콕 짚어 말하기는 쉽지 않다. 성격 차이 때문인지, 어려워진 가정 경제 때문인지, 결혼 생활은 원래 이런 건지, 우진과 사무엘은 답을 찾지 못한다. 무미건조한 일상을 쳇바퀴 굴리듯 살아갈 뿐이다.
19일 공개된 티빙 새 오리지널 시리즈 ‘LTNS'(Long Time No Sex)는 관계가 소원해진 섹스리스 부부가 돈을 벌기 위해 불륜 커플들의 뒤를 쫓으며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다.
드라마는 포스터에 적힌 ‘고자극 불륜 추적 활극’이라는 문구처럼 오프닝 장면에서부터 파격적인 내용을 보여준다. 섹스와 관련된 여러 주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과감하고, 담백하게 다뤄낸다.
‘LTNS’는 영화 ‘소공녀’의 전고운 감독과 ‘윤희에게’의 임대형 감독이 의기투합한 작품이다. 극본과 연출을 함께 맡았다.
독립 영화를 만들던 두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도 독특한 감성과 스타일을 선보인다. 대중적인 호소력을 욕심내지 않고, 현실적인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냈다.
블랙 코미디적 요소도 눈에 띈다. “사랑이 두 개일 수 있다”는 궤변으로 뻔뻔하게 불륜을 저지르는 정수, 온종일 주식 그래프만 들여다보는 정수의 딸 영국, 없는 형편에 천재로 태어난 딸을 보며 진저리 치는 정아 등 다양한 캐릭터들이 등장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배우 안재홍과 이솜은 전 감독의 영화 ‘소공녀’, 안재홍이 연출한 단편영화 ‘울렁울렁 울렁대는 가슴 안고’ 등에서 커플로 호흡을 맞춘 데 이어 이번에는 부부 역을 맡았다. 이미 탄탄하게 다져진 케미(호흡)와 자연스러운 일상 연기가 눈길을 끈다.
작품 속 우진은 ‘목표지향주의자’, ‘분노조절장애’, ‘이중인격’으로 그려진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편부가정에서 자란 그는 등록금 대출을 받아 가며 가까스로 서울 소재의 전문대학교를 졸업한 뒤 5성급 호텔에 취직한다.
하지만 고객을 응대하는 호텔 일은 과도한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월급은 적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 우진은 각종 신경성 질병을 달고 살다가 결혼 후 직장을 그만둔다.
이때까지만 해도 남편의 사업 실패는 예상치 못 한 일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남편이 우울증까지 걸리자 우진은 2년 만에 다시 일을 구한다. 공백기를 거치는 사이 직장은 5성급에서 3성급 호텔로 다운그레이드된다.
우진의 남편 사무엘은 위로 누나만 셋인 기독교 집안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 후 대기업에 들어갔지만, 고향 친구의 적극적인 제의에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가 회사가 망해 실직한다.
극심한 우울과 무기력에 빠져 한 해를 집에서만 보낸 사무엘은 오로지 책임감만으로 결혼 생활을 유지한다. 한때 매력적이던 수더분하고 털털한 우진의 성격은 이제 폭력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고, 그래서인지 사무엘은 우진과의 성관계를 가능한 한 회피하려 한다.
그렇다고 결혼 생활을 깨고 싶은 건 아니다. 사무엘을 지배하고 있는 것은 허울 좋은 책임감이고, 그에게 가족은 무조건 지켜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현실에 찌든 채 의무감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두 부부는 우연한 계기로 전환점을 만난다. 열심히 살아도 삶은 나아지지 않고 점점 더 찌들어만 가자, 양심과 체면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3성급 호텔에서 일하는 우진과 택시 기사로 일하는 사무엘은 직업적 특성을 살려 불륜 남녀들을 추적하고, 그들을 협박해 전에 만져본 적 없는 큰돈을 벌어들이기 시작한다.
두 부부의 현실적인 일상을 독립 영화처럼 연출한 1화는 호불호가 갈릴 수도 있지만, 불륜 남녀를 본격적으로 추적하는 2화에서부터는 색다른 재미가 펼쳐진다.
불륜 커플들의 사연이 흥미롭게 전개되고, 불륜의 증거를 잡으려는 우진과 사무엘의 추격은 스릴이 넘친다.
전고운 감독은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요즘 시대에 필요한 자극과 풍자를 담고 싶었다”며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에 충실하게 무조건 재미있고, 의미 있게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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