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 류경수 “이상한 영호…무리 이탈한 짐승 상상하며 연기”

“쉬운 길보다는 도전 계속해야 배우로서 ‘잔근육’ 생겨”

드라마 ‘선산’ 배우 류경수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만약 제가 현실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을 만한 평범한 모습의 연기를 했다면 ‘선산’은 그냥 그대로 끝나버려요. 그래서 이상한 사람, 어디선가 오랫동안 고립돼있었던 것만 같은 이질적인 인물로 보이려고 노력했죠.”

넷플릭스가 최근 공개한 6부작 미스터리 스릴러 드라마 ‘선산’에서 배우 류경수는 의문스럽고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김영호를 연기해 시작부터 끝까지 묘한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류경수는 25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영호 연기는 지금까지 제가 맡았던 역할 중 난도가 높았다”고 털어놨다.

그는 “만약 영호가 윤서하(김현주 분)에게 ‘아 누님 안녕하세요? 처음 뵙게 됐는데 사실 제가 동생이에요’하고 평범하게 말을 걸었다면 ‘선산’의 이야기는 성립할 수 없게 된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영호라는 인물을 만들어내야 해서 무리 지어 다니는 늑대나 들개 같은 야생 동물들의 모습도 관찰했다”고 설명했다. 영호가 놓인 처지나 그의 인상이 야생 동물과 비슷하게 느껴진다는 이유에서다.

“무리에서 이탈된 짐승은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없잖아요? 이탈한 뒤의 모습은 상상의 영역이죠. 무리에서 탈락한 야생동물의 느낌이 어떨지 반은 관찰하고 반은 상상했어요.”

드라마 ‘선산’ 배우 류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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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은 존재조차 모르던 작은아버지가 갑자기 돌아가시면서 선산을 상속받게 된 서하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서하는 선산이 가뭄의 단비처럼 반갑게 느껴지는데, 작은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생전 처음 보는 이복동생 영호가 나타나 자신도 선산에 권리가 있다고 주장한다.

영호는 드라마에 처음 등장하는 장례식장에서 모두가 신발을 벗고 올라가는 장례식장 마루 위에 신발을 신고 올라가며 수상한 분위기를 내뿜는다.

이어 영호는 서하에게 얼굴을 들이밀고 우울하면서도 조급한 말투로 “저 영호라고 누님 동생이에요, 당신 동생이라고, 배다른 동생”, “나도 당신 아버지가 낳은 자식이라고”라는 말을 되풀이하며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류경수는 이 장면을 영호의 가장 인상적인 장면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그는 “일단 영호는 다른 사람들하고 다르게 신발을 신고 장례식장에 들어가고, 멍하니 어디를 보는지도 모르겠는 모습을 보인다”며 “영호라는 인물을 표현하려고 세세한 부분에 많은 생각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본에 보면 영호의 행동에 서하가 도망친다든지 질겁하는 부분이 있는데, 영호가 일반적인 모습이면 이런 반응이 나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대사만으로는 다 설명하기 어려운 영호로 변신하기 위해 류경수는 인물을 면밀하게 해석해서 연기에 반영했다고 한다. 그의 의견이 수용돼서 일부 영호의 대사는 삭제되기도 했다.

류경수는 “제가 감독님께 영호는 최대한 말이 없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며 “영호를 평범한 모습으로 보이게 할 만한 일상적인 대사는 일부 덜어냈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류경수는 촬영 때마다 아랫니가 뒤틀리고 수염이 제멋대로 자란 영호로 변신하기 위해 1시간 30분 넘게 분장을 받았다고 한다.

드라마 ‘선산’ 배우 류경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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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가 강렬하게 등장한 이후 서하의 주변에서는 잇달아 나쁜 일이 벌어진다.

서하의 남편이 살해당하고, 서하의 집 문에 영호가 닭 피로 부적을 그려놓는 사건이 벌어진다. 서하는 남편 살인 사건의 범인이 영호라고 확신하고 흥신소 사장에게 증거를 찾아달라고 하는데, 오히려 흥신소 사장이 영호의 집 근처에서 주검으로 발견된다.

영호가 유력한 용의자로 의심받는 상황에서 사건을 추적하던 경찰들은 서하와 영호 가족의 비밀을 발견하게 되고, 모든 사건의 배후에 비극적인 가족사가 있었던 사실이 드러난다.

이 가족사 때문에 영호는 사회의 손가락질을 피해 어머니와 서로 의지하며 외롭게 살아왔다. 드라마 후반부에는 어머니를 향한 영호의 애틋한 마음이 드러난다.

류경수는 “완성된 드라마의 마지막 부분을 보는데 영호가 너무 불쌍하게 느껴졌다”며 “영호는 어린 시절 다른 친구들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누리지 못하고 자기 인생이 없었던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선산’은 가족이 뭔지, 가족의 모양 등에 대해서 많이 생각해보게 한 드라마”라고 평가했다.

드라마 ‘선산’ 배우 류경수
[넷플릭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2007년 류경수는 영화와 드라마를 오가며 꾸준히 많은 작품에 출연하고 연기 영역을 넓혀왔다.

‘이태원 클라쓰'(2020)에서 전직 조폭이면서 제2의 삶을 시작한 최승권 역할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고, ‘도시남녀의 사랑법'(2020)에서는 헤어진 여자친구를 향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강건 역할을 맡아 전혀 다른 매력을 보여줬다.

특히 ‘선산’의 각본을 쓴 연상호 감독과 인연이 깊다. 연 감독이 연출한 드라마 ‘지옥'(2021)에서 신의 뜻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사제를 연기했고, 연 감독이 연출한 영화 ‘정이'(2023)에도 출연했다.

류경수는 “저는 연 감독님을 향한 믿음이 있다”며 “성장할 수 있는 캐릭터를 저한테 제안해주시고 저도 그로 인해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제게는 귀인”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어떤 작품에 출연하고 싶은지 묻자 류경수는 “서로 사랑하는 연기를 해보고싶다”고 대답했다.

류경수는 “‘도시남녀의 사랑법’에선 헤어진 연인과의 사랑을 다뤘고, ‘구미호뎐 1938′(2023)에선 짝사랑하는 역할이었다”며 “‘썸’만 타는 것도 좋으니까 서로 사랑하는 연기를 해보면 어떨까 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류경수는 장르를 떠나 새로운 도전을 원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누군가는 도전이라고도 이야기하던데요. 어쨌든 그런(도전) 과정들이 제가 배우로서 연기를 해 나갈 때 ‘잔근육’이 생기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jae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