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블록버스터 2편과 경쟁…노인·반려동물 영화도 눈길
(서울=연합뉴스) 이영재 기자 = 이번 설 연휴(9∼12일) 극장가는 중소 규모의 한국 영화 세 편과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두 편이 경쟁하는 구도가 될 전망이다.
설 연휴 대목을 노리고 개봉하는 한국 영화 대작은 없어 예년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지난해 한국 영화 대작들이 잇달아 흥행에 실패한 여파라는 해석도 나온다.
◇ 아담한 규모의 한국 영화 3편
설 연휴는 여름 휴가철, 추석 연휴, 연말연시와 함께 극장가의 대목으로 꼽힌다. 해마다 설 연휴면 주요 배급사들이 대작을 띄워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지난해 설 연휴만 해도 임순례 감독 연출, 황정민·현빈 주연의 ‘교섭’과 이해영 감독 연출, 설경구·이하늬·박소담 주연의 ‘유령’이 맞붙었다. 각각 168억원과 137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들이다.
그러나 이번 설 연휴에 출격하는 김덕민 감독의 ‘도그데이즈’, 하준원 감독의 ‘데드맨’, 김용균 감독의 ‘소풍’은 모두 제작비가 100억원에 못 미치는 영화들이다. 세 영화는 이달 7일 동시 개봉한다.
이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건 제작비 82억원의 ‘도그데이즈'(배급사 CJ ENM)로, 손익분기점은 200만명이다.
귀여운 반려견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잔잔하고 따뜻한 이야기가 강점이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가 1천500만명에 달하는 시대상을 반영한 작품으로, 폭넓은 공감을 끌어낼 것으로 제작진은 기대하고 있다.
출연진도 화려하다. ‘미나리'(2021)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은 배우 윤여정은 세계적인 건축가 역을 맡아 귀감이 될 만한 멋진 어른의 모습을 보여준다. 유해진과 김서형의 로맨스 연기도 웃음과 감동을 자아낸다.
‘데드맨'(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은 75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로, 손익분기점은 180만명이다.
빚더미로 궁지에 몰려 자기 이름을 판 바지 사장의 이야기를 그린 스릴러로, 조진웅과 김희애가 주연을 맡았다.
하 감독은 돈을 받고 이름을 판 사람들을 5년 동안 취재해 직접 시나리오를 써 바지 사장의 세계를 사실감 있게 그려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2006) 각본을 공동 집필한 하 감독에게 ‘데드맨’은 연출 데뷔작이다.
‘소풍'(배급사 롯데엔터테인먼트)은 제작비 12억원의 저예산 영화로, 손익분기점은 25만명이다.
원로 배우 나문희, 김영옥, 박근형이 주연한 이 영화는 70대 노인 세 명이 고향 남해에서 재회해 삶을 반추하는 이야기다.
부모님이나 할머니, 할아버지를 떠올리게 하면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작품으로, 노년의 고통과 죽음에 관한 진지한 고민도 담았다.
올해 설 연휴에 한국 영화 대작을 볼 수 없게 된 건 지난해 대작들이 줄줄이 쓴맛을 본 여파로 볼 수 있다.
작년 설 연휴 대작인 ‘교섭’과 ‘유령’의 누적 관객 수는 각각 172만명과 66만명에 그쳐 손익분기점을 못 넘었고, 여름 휴가철의 ‘더 문'(51만명), ‘비공식작전'(105만명), 추석 연휴의 ‘1947 보스톤'(102만명), ‘거미집'(31만명), ‘천박사 퇴마연구소: 설경의 비밀'(191만명)도 고배를 마셨다.
한 배급사 관계자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가 남아 있는 데다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가 시청자를 끌어들이면서 극장에서 흥행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이라며 “대작을 만들어 놓고도 쉽게 개봉을 못 하는 보수적인 분위기가 지배적”이라고말했다.
꼭 대목에 개봉하지 않아도 흥행할 수 있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 지난해 천만 영화 반열에 오른 ‘범죄도시 3’와 ‘서울의 봄’ 개봉 시기도 각각 5월과 11월이었다.
이번 설 연휴 한국 영화의 소재와 장르는 겹치지 않고 다양한 편이다. 설 연휴에 맞춰 개봉한 세 편 외에도 라미란 주연의 범죄 추적극 ‘시민덕희’와 최동훈 감독의 판타지 ‘외계+인’ 2부 등이 연휴 기간 상영을 이어간다.
정지욱 영화평론가는 “관객 입장에서 선택의 폭은 넓은 것 같다”며 “대체로 상업성이나 오락성에 치우치지 않은 영화들이란 점도 긍정적이다”라고 말했다.
◇ 할리우드 영화는 ‘웡카’·’아가일’…황금종려상 ‘추락의 해부’도 주목
설 연휴에 출격하는 외국 영화 중에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판타지 ‘웡카’와 액션 영화 ‘아가일’이 눈에 띈다.
폴 킹 감독의 ‘웡카’는 할리우드 톱스타 티모테 샬라메가 주연해 주목받고 있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이 영화는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라 있다.
영국 작가 로알드 달의 소설 속 캐릭터인 세계 최고의 초콜릿 공장주 웡카의 소년 시절 이야기다. 뮤지컬이기도 한 이 영화는 아름다운 음악과 영상도 강점이다.
국내에서도 흥행한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2015)의 매슈 본 감독이 연출한 ‘아가일’은 스파이 소설 작가인 여성이 킬러들의 추격을 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로, 브라이스 댈러스 하워드, 헨리 카빌, 샘 록웰이 주연했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탄탄한 이야기와 웃음을 유발하는 코미디가 강점으로 꼽힌다.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인 쥐스틴 트리에 감독의 ‘추락의 해부’도 이번 연휴 영화 팬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일 전망이다. 한 남자의 추락사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법정 공방을 통해 인생에 관한 묵직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이다.
◇ 70∼80대 원로 배우들 감동적 연기…반려동물 영화도 눈길
이번 설 연휴를 맞아 개봉하는 한국 영화 가운데 ‘도그데이즈’와 ‘소풍’은 원로 배우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영화란 점도 눈에 띈다.
‘미나리’ 이후 글로벌 무대에서 주로 활동해온 윤여정(77)은 ‘도그데이즈’로 3년 만에 한국 영화로 돌아왔다.
‘소풍’의 나문희(83), 김영옥(87), 박근형(84)도 마찬가지다. 팔순에도 현역 배우로 활동 중인 이들의 연기는 노년의 회한과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을 끌어낸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관객의 관심을 끌 만한 영화도 많다.
‘도그데이즈’는 반려견 세 마리가 사람들의 사연을 이어주는 고리가 되고, 돌발적인 행동으로 웃음을 자아낸다. ‘아가일’에선 반려묘 한 마리가 신 스틸러 역할을 한다.
지난달 24일 개봉한 뤼크 베송 감독의 ‘도그맨’도 빼놓을 수 없다. 인간 사회에서 버림받아 개들 속에서 자란 남성의 이야기인 이 영화에는 약 120마리의 개가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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