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데드맨’서 이름 되찾으려는 40대 가장 역
“몰랐던 바지 사장 세계 알게 돼 섬뜩…한 인간의 성장 드라마”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실제로 존재하지만, 우리가 모르고 사는 사회의 단면이 많잖아요. 이 영화 속 세계를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면서 섬뜩해지더라고요.”
6일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조진웅은 그동안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던 이른바 ‘바지 사장’ 세계를 영화 ‘데드맨’을 통해 경험하게 된 소감을 묻자 이같이 답했다.
그는 오는 7일 개봉하는 이 영화에서 재력가들에게 명의를 빌려주고 돈을 받는 바지 사장이자 40대 가장 만재를 연기했다. 만재가 1천억원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쓰고 서류상 죽은 사람이 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가 영화의 주된 내용이다. 하준원 감독이 약 5년간의 취재를 거쳐 시나리오를 썼다.
조진웅은 “어떤 사람들은 사기 피해자에게 ‘바보같이 왜 제대로 알아보지 않았느냐’고 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순 없겠더라”면서 “그만큼 치밀하게 범죄가 이뤄지고, 이것이 각본 속에 잘 짜여 있었다”고 말했다.
‘데드맨’은 만재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사람을 쫓는 추적극이기 때문에 스릴러 성격이 강하다. 그러나 이름이라는 소재를 이용해 자기 정체성에 관한 화두도 던진다.
조진웅 역시 이런 점에 매료돼 작품을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어떻게 보면 ‘데드맨’은 한 인간의 성장 드라마”라면서 “그 외 등장하는 정치인, 비자금 같은 소재는 소도구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이 영화는 조진웅에게 이름의 가치를 되짚는 기회가 되기도 했다. 돈 몇 푼에 팔아버린 이름을 뒤늦게 되찾기 위해 극한의 상황까지 가는 만재를 몸소 연기하면서다.
조진웅은 “우리가 살면서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해 무시하는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이름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그런 점에서 철학적으로 깊이 있는 영화”라고 소개했다.
특히 법정에서 자신의 이름을 되찾게 되는 장면을 연기할 때 가슴이 먹먹해지는 경험을 했다고 그는 떠올렸다.
조진웅은 “‘이게 뭐라고 이렇게까지 달려왔을까’ 하는 허탈감이 들기도 했다”며 “가장 감정을 많이 담아 연기한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본명인 조원준 대신 아버지의 이름인 조진웅으로 배우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것이다.
“단 한 번도 아버지 존함으로 활동하는 걸 후회해본 적 없다”는 조진웅은 “(아버지의 이름을 빌린 만큼) 최소한의 것들은 지키며 살아오고 있다”고 강조했다.
요즘은 네 살배기 딸을 보면서 “이런 모습만큼은 보이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일도 많다고 한다.
2004년 ‘말죽거리 잔혹사’로 영화계에 입문한 조진웅은 어느덧 데뷔 20년 차의 중견 배우가 됐다.
몇 년 전만 해도 ‘신 스틸러’, ‘명품 조연’이라는 수식어가 그를 따라다녔지만, 이제는 단독 주인공으로 극을 이끄는 반열에 올라섰다. 다만 최근 흥행 성적이 좋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그러나 조진웅은 “코로나19가 지나면서 영화라는 콘텐츠의 정체성이 확립돼가는 것 같다”면서 “100만 관객을 달성하지 못해도 관객들이 가치를 인정해주는 영화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극장이라는 마법 같은 공간은 무시할 수 없는 곳이고, 이곳에 걸리는 영화는 특별한 이야기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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