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년 뒤 외계문명의 침공 대비하는 내용…주간 세계 2위 기록
(서울=연합뉴스) 황재하 기자 = “너희에게 경고한다. 회신하지 마라. 회신하면 우리가 가서 너희 세계를 점령할 것이다.”
1977년 네이멍구. 정부의 명령으로 어디에 있을지 모르는 발달한 외계 문명을 향해 메시지를 발송하던 과학자 예원제(자인 쳉 분)는 외계에서 이런 메시지를 받는다.
낯선 외계 문명은 “나는 우리 세계의 평화주의자”라며 “내가 너희의 메시지를 발견한 것은 너희에게 행운”이라고 설명한다. 지구에서 계속 메시지를 보내다가 외계의 호전적인 세력에게 발견되면 화를 입게 될 거라는 경고다.
예원제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내 외계 생명을 향해 이렇게 회신한다. “와라, 우리 문명은 이미 자구력을 잃었다. 이 세계를 점령하도록 내가 돕겠다.”
지난 21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미국 드라마 ‘삼체'(3 Body Problem)의 한 장면이다. 이 작품은 인류가 상상하기 어려운 높은 수준의 문명을 이룩한 외계 생명체의 손에 지구가 지배당할 위기에 빠졌다는 설정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물리학자인 예원제의 아버지는 반혁명적인 과학이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문화대혁명 때 목숨을 잃는다. 예원제 역시 벌목장에서 강제노동을 하게 되지만, 당국은 예원제의 뛰어난 과학지식을 알아보고 그를 외계 문명에 신호를 보내는 비밀 작전에 투입한다.
아버지의 죽음과 정치적 풍파 속에 인간을 향한 깊은 회의감에 빠진 예원제는 외계 생명체에 지구를 점령해달라고 요청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외계생명체들이 미확인 비행물체를 타고 지구로 당장 날아와 폭격을 가할 것 같지만, 외계 문명이 지구에 도달하기까지는 400년에 달하는 시간에 걸린다.
외계 문명은 이 긴 시간 동안 인류가 외계의 공격에 맞설 만큼 과학기술을 발전시키지 못하도록 방해한다. 이들의 손에 2024년 지구의 저명한 과학자들이 잇달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삼체’는 과학적인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와 400년 후 미래의 위협에 대비한다는 독특한 설정으로 시청자의 눈길을 끌고 있다.
27일 넷플릭스에 따르면 이 드라마는 영어권 TV 시리즈 부문에서 시청 수(Views·시청 시간을 재생 시간으로 나눈 값) 주간 2위를 기록했다. 한국을 비롯한 93개 국가에서 10위 이내에 들었고 독일과 체코를 비롯한 15개 국가에서 1위에 올랐다.
일간 순위를 집계하는 플릭스패트롤을 보면 ‘삼체’는 공개 이틀 만에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본 시리즈 1위에 올랐다.
이 작품은 2015년 아시아 최초로 ‘SF의 노벨문학상’이라 불리는 휴고상을 받은 중국 작가 류츠신의 ‘삼체'(원제 ‘지구의 과거’) 3부작을 원작으로 삼아 기발한 소재와 탄탄한 이야기 구조를 갖췄다.
그렇다고 드라마가 원작의 후광에만 의지한 것은 아니다. 드라마 ‘삼체’의 각본은 인기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을 각색한 데이비드 베니오프와 대니얼 브랫 와이스가 썼다. 이들은 원작을 효과적으로 각색했다.
2010년 완결된 원작 소설의 이야기는 주로 2000년대 중국이 배경이지만, 드라마 제작진은 2024년 영국의 과학자들을 주인공으로 세웠다. 원작의 등장 인물들은 시대와 지역을 반영해 재탄생됐다.
특히 드라마는 시각특수효과(VFX)를 활용해 소설에서 볼 수 없는 화려한 시각효과를 구현했다.
극중 태양이 3개인 행성에서 사는 외계 문명이 인간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수단으로 가상현실 게임을 이용하는데, 행성이 불타버리거나 중력의 영향으로 모든 물체가 떠오르는 장면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외계 문명이 주인공에게 경고하기 위해 ‘우주가 윙크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마치 불을 껐다 켜는 듯 하늘의 모든 별이 빛을 잃었다가 되찾기를 반복한다.
‘삼체’는 종반부 외계 문명의 함대에 침투할 정찰 탐사정을 발사하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이미 시즌2 제작을 위한 기획이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남은 이야기는 후속 시즌에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미국 평점 사이트 IMDB 이용자 2만5천명은 ‘삼체’에 평균 7.8점(10점 만점)을 줬다. 로튼토마토 신선도 지수는 77%(100% 만점)를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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