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보드 진입 아일릿 한 달·피프티 넉 달…빨라진 K팝 흥행 시계

“K팝 글로벌 주류 시장 안착, 데뷔 전 이미 팬덤 형성”…틱톡 열풍 수혜도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K팝 스타들의 미국 등 글로벌 주류 시장 진입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꿈의 차트’로 불리는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에 데뷔 직후 이름을 올리는가 하면, Z세대에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는 틱톡 등 숏폼 플랫폼에서 흥행하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가요계에서는 이를 두고 K팝이 글로벌 주류 시장에 안착하는 과정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하이브 신인 그룹, 아일릿 데뷔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신인 그룹 아일릿이 3월 25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블루스퀘어에서 열린 데뷔 쇼케이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3.25 ryousanta@yna.co.kr

◇ 더 빨리·더 오래 미국 빌보드 메인 차트 진입

18일 가요계에 따르면 신인 걸그룹 아일릿의 데뷔곡 ‘마그네틱'(Magnetic)은 미국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핫 100’ 91위를 기록했다. K팝 데뷔곡이 이 차트에 진입한 것은 이들이 최초로, 지난달 25일 발매 이후 한 달도 채 걸리지 않았다.

‘마그네틱’은 전주 ‘핫 100’ 102위에 해당하는 ‘버블링 언더 핫 100’ 2위를 차지했다. 해당 주에 무려 23곡을 진입시킨 비욘세의 ‘폭격’이 아니었다면, 아일릿의 기록은 일주일 앞당겨질 수도 있었다는 뜻이다.

피프티 피프티는 지난해 대표 K팝 히트곡 ‘큐피드'(Cupid)로 데뷔 4개월 만에 ‘핫 100’ 100위로 진입했다. ‘큐피드’는 중독적인 멜로디와 듣기 편한 운율감을 앞세워 빌보드 연간 결산 싱글 차트 44위를 기록했다.

이처럼 주요 K팝 가수들의 빌보드 ‘핫 100’ 차트 인으로 상징되는 미국 주류 음악 시장 진입이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과거 ‘한국 데뷔 → 국내 성공 → 일본 등 아시아 데뷔 → 미국 데뷔 후 차트 진입’ 순서로 수년씩 걸리던 것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밖에 걸그룹 엔믹스는 데뷔 약 1년 1개월 만인 지난해 4월 첫 번째 미니음반 ‘엑스페르고'(expergo)로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 ‘빌보드 200’에 진입했고, 뉴진스는 데뷔 6개월 만인 지난해 1월 ‘디토'(Ditto)로 ‘핫 100’에 처음 이름을 올렸다.

또 YG가 야심 차게 준비한 신인 베이비몬스터는 빌보드와 더불어 글로벌 인기를 가늠하는 주요 지표인 스포티파이 글로벌 일간 차트에서 정식 데뷔곡 ‘쉬시'(SHEESH)로 15일째 상위권을 유지 중이다.

K팝 시장을 선도하는 선배 스타들은 주류 시장에서 ‘롱런’을 이어가는 추세다.

방탄소년단 정국의 첫 솔로 앨범 ‘골든'(GOLDEN)은 ‘빌보드 200’에서 23주 연속 진입했고, 타이틀곡 ‘스탠딩 넥스트 투 유'(Standing Next to You)는 19주 연속 차트인 했다. 블랙핑크의 제니가 더 위켄드·릴리 로즈 뎁과 협업한 ‘원 오브 더 걸스'(One Of The Girls)는 ‘핫 100’에 16주째 머물렀다.

걸그룹 베이비몬스터
[YG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K팝, 위기론 뚫고 글로벌 주류 시장 안착하나

이러한 성과에 가요계는 K팝의 위상이 예전과는 달라졌다고 보고 있다.

한 대형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최근 드러난 기록들은 K팝이 미국 음악 시장에 주류 장르로 안착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이는 K팝 팬덤을 넘어서는 대중적 인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작년 미국에서 세계 최대 음원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K팝을 스트리밍한 횟수는 역대 최다인 5억8천만건을 기록했다.

또 미국 음악 시장 조사 업체 루미네이트가 같은 해 미국에서 많이 스트리밍된 상위 1만곡의 언어를 분석한 결과 한국어 노래는 스페인어곡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이 소비되는 비(非)영어 음악으로 조사됐다.

이 관계자는 “K팝이 더는 특정 소비자를 겨냥한 장르가 아니라, 알앤비(R&B)나 록 같은 보편적인 장르로 대중에게 인식되는 과정에 있다”고 짚었다.

K팝 가수들이 데뷔 전 거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나 방대한 사전 콘텐츠가 힘을 발휘했다는 시각도 있다.

또 다른 대형 가요 기획사 관계자는 “베이비몬스터는 데뷔 전 자체 선발 프로그램을 통해 이미 광범위한 글로벌 인기를 구축했다”며 “멤버들의 실력에 더해 팬덤이 뒷받침되면서 데뷔와 동시에 글로벌 시장에서 힘을 낼 수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피프티 피프티 키나
[어트랙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틱톡 등 숏폼 콘텐츠 타고 글로벌 Z세대 공략

K팝이 가진 강력한 ‘무기’ 가운데 하나는 글로벌 Z세대가 애용하는 틱톡 등 숏폼 플랫폼이다.

지난해 피프티 피프티의 ‘큐피드’가 국내에서 명성을 얻기도 전에 ‘스페드 업'(Sped Up·속도를 높인) 버전이 해외 틱톡에서 먼저 반향을 일으킨 게 전형적인 사례다.

아일릿의 ‘마그네틱’ 역시 중독성 있는 음악과 특색 있는 포인트 안무로 숏폼 콘텐츠에 최적화됐다는 평가를 받으며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마그네틱’ 음원을 사용한 콘텐츠 수는 전날 현재 틱톡에서 38만개, 인스타그램 릴스에서 36만개에 달한다.

틱톡 코리아 관계자는 “스트리밍 서비스로 음악을 ‘듣던’ 이용자들은 이제 틱톡에서 음악을 ‘보고’, 취향에 맞는 음악을 ‘발견’하고 있다”며 “틱톡이 루미네이트와 공동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틱톡 소비자가 새로운 음악 콘텐츠를 발견하고 공유할 가능성이 다른 플랫폼 대비 월등하게 높다고 나왔다”고 설명했다.

틱톡이 자체 집계한 지난해 글로벌 인기 음악 1위는 ‘큐피드’였고, 글로벌 톱 10 아티스트 가운데 K팝 가수는 블랙핑크·방탄소년단·엔하이픈·르세라핌·뉴진스 등 절반인 5팀에 달했다. 그만큼 K팝이 틱톡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한 신인 걸그룹 기획사 관계자는 “멤버들이 직접 틱톡 챌린지를 촬영하기도 하고, 유명 인플루언서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노래를 사용한 영상을 올려달라고 하는 경우도 있다”며 “피프티 피프티의 성공에서 드러났듯이 틱톡 등 숏폼 플랫폼은 해외로 진출하기 위한 좋은 교두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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