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훈 교수, 세종실록 속 살인 행위·살인자-피해자 관계 등 분석
10명 중 3명은 ‘계획범죄’…”세종, 살인사건 직접 살피고 판결”
(서울=연합뉴스) 김예나 기자 = “청주(淸州) 사람 건지중이와 보은덕은 율(律)에 의하여 능지처사(凌遲處死)하고 내은동도 함께 참형에 처하게 하옵소서.”
1438년 4월 21일 의금부는 세종(재위 1418∼1450)에게 이렇게 아뢴다.
능지처사는 죄인을 죽인 뒤 시신의 머리, 몸, 팔, 다리를 자르는 극형이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몸을 소중히 여기던 그 시절, 대역죄나 패륜을 저지른 이에게 내려진 형벌이었다.
의금부가 고한 내용에 따르면 건지중이라는 인물은 그의 형 신원(申元)의 재산을 빼앗으려고 신원의 딸 보은덕, 이웃 사람 내은동과 공모해 신원을 살해했다.
이들은 그 흔적을 없애고자 집에 불을 질지르고 어린아이의 목숨까지 빼앗았다.
재산을 노린 살인에 증거 인멸, 방화까지 모두 실록에 기록된 역사다.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여겨지는 세종이 다스렸던 그 시절, 살인 사건은 얼마나 발생했을까.
26일 박진훈 명지대 사학과 교수가 학술지 ‘사학연구’ 최신호에 실은 ‘조선 세종대 살인 유형 및 살인범 분석’ 연구 논문에 따르면 세종이 재위하던 32년간 살인에 연루된 사람은 562명에 달한다.
실록에 기록된 살인죄 또는 살인범 관련 내용을 집계한 수치다.
한 해 평균으로 따지면 약 17.5명 정도가 살인 사건에 연루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교수는 “세종은 살인범에 대한 심문 기록을 직접 살펴보고 최종적으로 처결했다. 만약 조사가 미비하거나 의심이 가면 재조사를 명령했고, 이후 최종 형량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살인 사건과 관련한 기록을 분석해 살인 행위를 분석했다.
그 결과, 살인 사건에 연루된 범죄자 562명 가운데 401명은 구체적인 내용이 명시돼 있었다. 나머지(161명)는 ‘살인’ 또는 한자 ‘殺'(죽일 살)로만 기록돼 있었다.
범죄 내용이 확인된 401명 중 계획 살인을 뜻하는 모살(謀殺)은 125명으로 전체의 약 31.2%였다.
살인을 저지른 방법도 다양했다.
사람을 때려죽인 구살(毆殺) 혹은 타살(打殺) 사례는 총 110명으로 가장 많았다. 반면, 칼이나 낫과 같은 날카로운 흉기로 사람을 죽인 경우는 16명이었다.
박 교수는 “전체 살인에서 흉기를 사용한 비중이 약 3∼4%이고, 살인 방법이 기재된 사례에서도 약 9%”라며 “일반인이 평소 흉기에 접근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귀신에게 빌어 주문이나 저주로 살인을 꾀했다고 기록된 ‘저주 살인’도 2명 확인됐다.
살인에 이르게 된 계기를 살펴보면 서로 싸우다가 상대를 살해한 투살(鬪殺)과 투구살(鬪毆殺·싸우다가 손발이나 흉기로 때려죽인 것) 범죄자는 총 40명으로 집계됐다.
강도 행위를 하다 살인에 이르게 된 경우는 17명이었다.
일례로 세종 13년(1431) 5월 15일 실록 기사는 상주 지역에 살던 권중이·김이동·박군자 등 3명이 이웃집의 닭을 훔쳤다가 주인이 쫓아오자 그를 ‘살상'(殺傷)했다고 전한다.
박 교수는 “세종 때 살인 사건은 고의성 여부, 살인 방법, 살인의 계기 등 세 가지 기준으로 분류되고 이에 따라 심사됐다”며 “사건에 따라 기재하고 심사하는 기준이 달랐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선 세종대에 발생한 살인 사건과 살인범과 피해자 간 관계를 분석함으로써 법제사 또는 사회사적인 면을 드러낼 수 있을 것”이라고 연구 의의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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