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미조 “젊은 후배들과 듀엣 하면서 목소리도 고와졌죠”

나이에서 제목 딴 새 앨범 ’75’ 발매…이효리·손태진 등과 호흡

“내 삶의 흔적이 노래에 배어…’엄마의 봄’ 연습하며 많이 울었죠”

가수 정미조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가수 정미조가 지난 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7.16 ryousanta@yna.co.kr

(서울=연합뉴스) 이태수 기자 = “작업 결과를 들어보니 목소리가 예전보다 젊어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어요. 젊은 후배들과 부르다 보니 목소리가 곱고 이쁘게 어우러졌어요.”

가수 정미조는 이달 10일 4년 만에 새 앨범 ’75’를 냈다. 그가 2016년 가요계로 돌아온 이후 발표한 네 번째 음반이다. 앨범에 실은 12곡 가운데 7곡이 후배들과의 듀엣곡이라는 점이 눈에 띈다. 참여한 후배 가수들의 면면을 보면 손태진, 유채훈, 존박, 하림, 강승원, 이효리 등으로 화려하다.

정미조는 15일 서울 종로구 연합뉴스 스튜디오에서 한 인터뷰에서 “후배들과의 작업은 내게도 새로운 영감이자 도전이었다”며 “‘내 목소리에 이런 게 숨어있었구나’ 하고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가 됐다”고 돌아봤다.

앨범에는 손태진과 부른 ‘통영’, 유채훈과 함께한 ‘떠나요’, 존박과 호흡을 맞춘 ‘너의 눈망울’, 이효리가 듀엣으로 참여한 ‘엄마의 봄’ 등이 담겼다.

정미조는 특히 ‘통영’과 ‘떠나요’ 등의 노래에서는 도입부를 아예 후배 가수들에게 내줬다. ‘주인’인 그가 한 발 뒤로 과감히 물러선 셈이다.

그는 “(가수 복귀 후) 벌써 네 번째 앨범이다. 나 혼자 불렀다면 특별한 소감도 없었을 것”이라며 “후배 가수들과 7곡이나 협업을 했기에 후배들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그 어떤 앨범보다도 많은 이야깃거리가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정미조는 맑고 순수한 느낌을 강조한 ‘너의 눈망울’을 통해서는 “내 새로운 목소리를 발견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가슴 찡하게 녹여낸 ‘엄마의 봄’에서는 “이효리와 나의 서로 다른 목소리가 잘 어우러졌다”고 평했다.

가수 정미조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가수 정미조가 지난 15일 연합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2024.7.16 ryousanta@yna.co.kr

‘돌아온 디바’ 정미조와 1세대 아이돌 출신 톱스타 이효리와의 인연이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이번 앨범 프로듀서를 맡은 재즈 뮤지션 손성제가 친분이 있던 이효리의 남편인 기타리스트 이상순에게 연락했고, 이효리가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고 했다.

‘엄마의 봄’ 녹음은 올해 2월 이뤄졌는데, 정미조는 당시 코로나19에 걸리는 바람에 이효리의 녹음 작업에 함께하지 못했다.

정미조는 대신 이효리가 진행한 음악 프로그램 ‘이효리의 레드카펫’에 출연해 ‘엄마의 봄’을 듀엣으로 불렀다.

그는 리허설 현장에서 이효리의 손을 꼭 잡고 “(곡에 참여해줘서) 고맙다”고 말했고, 이효리는 “선생님의 곡을 평소에 좋아했다”고 화답했다.

이번 앨범에는 ‘엄마의 봄’이 두 가지 버전으로 수록됐다. 하나는 이효리와의 듀엣곡이고, 다른 하나는 그가 솔로로 부른 것이다.

두 버전 모두 “봄길 앞질러서 떠나버린 나의 엄마”라는 가사로 노래가 끝난다. 그런데 정미조가 홀로 부른 버전에서는 듀엣곡과는 달리 탄식 같은 슬픔이 ‘뚝뚝’ 묻어져 나온다.

정미조는 “실은 제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셨다”며 “그래서 그리운 마음에 홀로 부른 버전에는 슬픔이 더욱 묻어나온 것 같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그는 “지금도 엄마가 보고 싶다. 엄마는 내 모든 것이었다. 엄마가 없어지며 우주를 잃어버렸다”며 “75살이 돼서야 엄마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됐다. 지금까지는 인터뷰에서 엄마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엄마가 돌아가신 이후에 ‘엄마’라는 말을 할 일이 없어졌다가 이 노래를 통해서 비로소 하게 된 것이 아니냐”며 “‘엄마의 봄’을 연습하면서 많이 울었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있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1972년 이화여대 서양화과 졸업과 동시에 데뷔한 정미조는 ‘개여울’과 ‘그리운 생각’이 히트하며 1970년대 최고의 디바로 사랑받았다. 그는 이지적인 이미지와 기품 넘치는 목소리로 패티김을 잇는 대형 가수로 인정받았으며 ‘휘파람을 부세요’, ‘불꽃’, ‘사랑의 계절’ 등을 잇달아 히트시켰다.

고등학생 때 노래 대회에서 1위를 하고, 대학 시절에도 범상치 않은 노래 실력에 각종 행사에서 마이크를 잡은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길이었다.

정미조는 “신입생 환영회나 이화여대 채플 시간에 노래한 것은 물론 수송기를 타고 베트남까지 날아가서 학생들과 위문 공연도 했다”며 웃었다.

그는 그러나 1979년 돌연 가요계를 은퇴하고 프랑스 파리로 미술 유학을 떠났다. 화가이자 대학교수의 길을 걷던 정미조는 2016년 2월 ’37년’을 발표하며 가요계로 돌아왔다.

정미조는 “그림이 붓으로 캔버스 위에 내 예술 세계를 표현하는 것이라면, 음악은 소리로 표현하는 것”이라며 “그림은 잘못되면 찢어버리거나 흰색으로 덮어버릴 수 있지만, 음악 무대는 주어진 시간 안에 무슨 일이 있어도 완벽하게 해내야 하는 차이가 있다”고 짚었다.

그는 “노래에는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과 몸의 컨디션이 묻어나올 수밖에 없다”며 “내 삶의 흔적이 노래 안에 배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가수 정미조
(서울=연합뉴스) 류효림 기자 = 가수 정미조가 지난 15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24.7.16 ryousanta@yna.co.kr

정미조는 이번 앨범명으로 자신의 나이인 ’75’를 붙였다. 처음에는 나이를 제목으로 삼자는 소속사의 아이디어에 반대했지만, ’75세의 나이에 완전히 새로운 음반을 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서 이를 받아들였다고 한다.

그는 “지금까지도 마음만은 늘 아이 같다”며 “한순간 한순간을 살다 보니 70대라는 생각이 잘 들지 않는다. 늘 30∼40대인 것 같고, 신체는 50대라고 생각한다. 70대는 내게 다른 세계 같다”고 말했다.

젊은 후배 가수들도 정규 음반을 잘 내지 않는 이 시대에 그는 70대 중반의 나이에 12곡 꽉 찬 작품을 선보였다. 하림과 함께 “그대 살아 있는가 / 그대 뜨겁게 살아 있는가 / 아직 못다 한 노래 남아있는가”라고 외친 ‘살아있는가’의 가사처럼 열정을 아끼지 않았다.

“제 삶의 원동력이요? 노래죠. 처지고, 지치고, 힘들더라도 노래하거나 방송 녹화를 하면 어디서 그런 힘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작년 11월 이화여대 총동창회 행사에서 공연했는데, 다들 ‘어디서 그렇게 엄청난 소리가 나오느냐’고 하더라고요. 하하.”

tsl@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