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배수아 장편소설 ‘속삭임 우묵한 정원’

강은교 시집 ‘미래슈퍼 옆 환상가게’

[은행나무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 속삭임 우묵한 정원 = 배수아 지음.

“여행의 시작에 우체부가 왔다. 이것은 최초의 여행에 관한 글이다. 여행은 편지와 함께 시작되었다.”

배수아의 신작 장편소설 ‘속삭임 우묵한 정원’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한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MJ’라는 인물에게서 온 편지를 받고서 읽지 않은 채로 여행 가방을 싸려 한다. 한 통의 편지로부터 시작될 여행을 앞두고 MJ에 대한 기억에 묻혀 따라온 시간과 풍경, 당시의 감정들이 복원된다. 오랜 시간 연락도 하지 않은 채 지냈고 우연히 길에서 마주쳐도 알아보지 못할 사람인 MJ는 왜 갑자기 편지를 부쳐온 것일까.

소설은 화자의 서술로만 전개되면서 여러 겹의 기억에 얹힌 시간과 여러 사람의 기억과 회상이 엇갈리며 특별한 플롯도 없이 진행된다.

여러 시공간을 파편적으로 오가는 모호한 이야기들 속에서도 배수아 작품 특유의 긴장감이 느껴진다.

은행나무. 364쪽.

[민음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 미래슈퍼 옆 환상가게 = 강은교 지음.

“다시 살아도 이렇게 살게 될 거야 / 스무 살에 연애를 하고 / 둬번쯤 긴 키스를 꿈꾸다가 / 사소한지 모르는 결혼을 하고 / 사소한지 모르는 이별을 하고 / 헐떡헐떡 뛰어가 버스를 타고 / 잠시 숨을 멈추는 동안 / 사소하고 사소하게 정찰표를 들여다보네 “(강은교 시 ‘인생’에서)

강은교(79) 시인은 신작 시집 ‘미래슈퍼 옆 환상가게’에서 생의 노을기에 이르러 황혼의 조명 아래 환히 드러나는 일상의 사소한 풍경들을 섬세한 시어들로 포착해냈다.

‘풀잎’, ‘허무집’ 등의 시집을 통해 허무의 심연과 윤회적 가치관을 노래했던 시인은 어느덧 팔순을 바라보는 노년에 이르렀고, “문득 별이 가까이 오는 저녁이면 뉴스를 보며 내가 그 여러 통계의 하나임을 실감”하고 “사소하고 사소하게” 잠이 든다.

시집의 서문인 자서(自序)에서 그는 “시여, 달아나라, 시여, 떠나라, 시의 늪들을./ 그때 시는 비로소 일어서리니.”라고 적었다.

민음사. 1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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