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일제강점기 내한 선교사 꾸준히 소개하는 전기 작가 임연철 씨
‘한국기계 기술의 개척자 그레그’ 출간…”안익태에 첼로도 가르쳐”
(서울=연합뉴스) 이세원 기자 = “사애리시(史愛理施) 선교사는 1933년 저희 할머니에게 기독교를 전파한 분이었어요. 자료를 조사하다 그분이 유관순(柳寬順·1902∼1920) 열사를 이화학당에 편입시켰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1906년 YMCA 산업학관 설립자 겸 공업 선교사로 한국에 온 조지 아서 그레그(1863∼1939) 선교사를 조명한 ‘한국기계 기술의 개척자 그레그’를 최근 출간한 임연철(76) 전기 작가는 구한말·일제강점기 서구 문물을 전한 내한 선교사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작업에 나선 계기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조모와의 인연에 주목해 사애리시라는 한국 이름을 쓴 앨리스 해먼드 샤프(1871∼1972) 선교사에 관한 자료를 수집하다 그가 유관순 열사 스승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임 작가는 미국에 가서 감리교 아카이브까지 뒤지는 등 본격적인 조사에 나섰다. 취재 결과를 모아 사애리시가 충청 지역 여성 선교와 교육에 헌신한 과정을 조명한 단행본 ‘이야기 사애리시’를 2019년 출간한 것이 시작이었다.
‘한국기계 기술의 개척자 그레그’는 임 작가의 손을 거친 내한 선교사에 관한 8번째 책이다.
그는 유관순 열사가 순국하자 서대문 형무소를 직접 찾아가 시신을 인수하고 수의를 입힌 지네트 월터(1885~1977) 선교사를 주제로 한 ‘지네트 월터 이야기'(2020), 한국에 스포츠 축구·야구·배구·농구를 도입한 YMCA 체육 교사 바이런 반하트(1889∼1942)를 다룬 ‘반하트'(2021), 우유 급식 사업으로 유아·어린이 건강 향상에 기여한 마렌 보딩 간호 선교사를 소개한 ‘마렌 보딩 이야기'(2022)를 썼다.
또 공주영명학교를 세우고 농업 교육에 이바지한 프랭크 윌리엄스(1883∼1962)와 그의 아들 조지 윌리엄스(1907∼1994)를 소개한 ‘우리암과 우광복 이야기'(2022, 공저), 사애리시의 남편으로 충청 지역에서 교육·선교 활동을 펼친 로버트 샤프(1872∼1906)를 다룬 ‘이야기 로버트 샤프'(2022, 공저)도 펴냈다.
한국 전쟁 때 포로가 된 이들을 포함해 감리교 선교사 6명의 이야기를 다룬 ‘적의 손아귀에서'(2023)를 번역·출간하기도 했다.
임 작가는 ‘한국기계 기술의 개척자 그레그’에서 미국 현지 자료 조사 결과를 토대로 한국 공업 발전에 헌신한 그레그의 삶을 독자들에게 알린다.
책에 따르면 그레그는 캐나다 장로교의 개척자 중 한 명인 윌리엄 그레그(1817∼1909)의 4남으로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다. 그는 21세 때부터 4년간 토론토와 미국 디트로이트의 기계 공장에서 도제식 교육을 받으며 철 공구 조작 기술을 배운다. 이후 디트로이트에서 1년 반 동안 기계제도를 익히고 8년간 뉴욕주 올버니의 제조업체에서 제도 주임으로 일하는 등 기술 분야에서 활동한다. 제도 전문가로 일하면서 YMCA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해 공업 선교사가 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했다.
그레그는 43세 때인 1906년 YMCA 산업학관 설립자 겸 공업 선교사로 한국에 온다. 연령으로 보면 통상적인 선교사의 해외 부임보다는 늦은 편이었지만 그는 내한하자마자 임시 건물을 지었으며 이듬해 선발과 밀링머신을 설치해 기계 제도를 가르치는 등 의욕적으로 활동했다고 한다.
그는 구례구(具禮九)라는 한국명을 사용하며 1927년 중풍이 심해져 할 수 없이 귀국할 때까지 20여년 동안 철공, 목공 등 다양한 분야의 서양 근대 기술을 조선의 청년들에게 전수했다. 한국 체류 중 배출한 제자는 3천명에 달하며 이들은 “오랜 은둔 상태”에서 깨어나고 있던 한국의 공업 발전의 기반을 닦았다.
흥미로운 점은 공업 선교사인 그레그가 안익태에게 첼로도 지도했다는 것이다.
그레그가 일요일마다 교회를 돌며 첼로를 연주한다는 소식을 들은 평양숭실중학교 모우리 교육선교사가 제자인 안익태의 개인교습을 부탁해 역사적인 만남이 성사됐다고 책은 전한다. 안익태는 여름방학 동안 서울에 와서 청진동 숙모 집에 머물면서 YMCA로 통학했고 하루에 10시간씩 두 달간 첼로를 배웠다.
30여년간 일간지 기자로 활동하기도 한 임 작가는 종교 활동에 집중하거나 호러스 뉴턴 알렌(1858∼1932)처럼 이미 잘 알려진 선교사보다는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한 이들을 알리는 데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그는 “저는 교육, 의료, 사회사업, 공업 등의 분야에서 활동한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며 “예를 들어 스포츠 체육 선교사인 반하트는 YMCA에서 체육관을 만들 때 와서 배구, 농구를 가르치고 스포츠맨십이 무엇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알려준 최초의 선교사”라고 말했다.
임 작가는 “이런 분들이 잘 알려지지 않은 상태에서 우리나라 현대 문화의 저변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관련 책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 의료 분야에서 활동한 선교사를 주제로 한 책 출간을 준비하는 등 역사학자나 교회 학자들이 덜 주목하는 분야의 틈새 채우기에 열중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나라도 돌보지 못하는 교육, 의료, 스포츠, 공업, 사회사업 쪽에서 활동한 분들의 책을 힘이 닿는 데까지 계속 써보려고 합니다. 그분들은 오늘날 한국이 기술·문화 강국이 되는 씨앗을 뿌린 사람들이죠.”
sewonle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