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만에 내한해 라이브 드로잉쇼·팬미팅…”차기작은 ‘모비딕’ 호러 버전”
(서울=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웹툰은 공포 만화에 확실히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언젠가 기회가 있다면 제 그림으로 승부를 보고 싶네요.”
일본 공포만화 거장 이토 준지(伊藤潤二·61)는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홍대 LC타워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웹툰처럼 세로 스크롤 방식으로 공포 만화를 만들 생각이 있냐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이토 작가는 1987년 공포만화 ‘토미에’로 데뷔해 40년 가까이 ‘소용돌이’, ‘목매는 기구’ 등 여러 작품을 통해 기괴하고 찜찜한 공포감을 표현해왔다.
그는 “현실에서는 설명이 안 되는 기묘하고 무서운 설정을 만들고 이를 수수께끼처럼 보여준다”며 “그다음에 관련 사건을 풀어나가고, 수수께끼는 해결이 안 된 채로 두는 것이 내 공포 만화의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런 설정이 유령, 귀신 같은 것이 아니고 SF에 가깝다”며 “아이디어 자체로만 보면 SF가 될 수도 있고 공포가 될 수도 있는데, 이를 최대한 호러 쪽으로 끌고 간다”고 덧붙였다.
이토 작가는 죽음이라는 인류 보편적 공포를 활용해 이야기를 끌어가며 특히 죽음으로 연결될 수 있는 요소들에 중점을 둔다고도 밝혔다.
예를 들어 곰팡이가 피거나 벌레가 잔뜩 꼬인 것은 그 자체가 무섭기보다는 병에 걸려 죽음으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에 공포감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토 작가는 “(개인적으로) 죽음을 부르는 모든 것이 무섭다”며 “인간이 느끼는 공포는 그렇게 다르지 않다. 죽음에 대한 공포는 국가와 무관하게 인간이라면 누구나 느낀다”고 강조했다.
대표 캐릭터이자 작가가 가장 애착을 가진 캐릭터인 토미에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서는 “중학생 때 친구가 교통사고로 갑자기 죽었는데 이를 현실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며 “토미에는 죽어도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캐릭터라서 그때의 오묘하고 이상한 느낌을 살린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주요 캐릭터 소이치를 두고는 “제 유년 시절을 투영한 캐릭터”라며 “저 스스로가 어릴 때 뒤틀린 성격을 갖고 있었는데 그걸 것을 최대한 강조하는 형식으로 캐릭터를 풀어냈다”고 설명했다.
토미에와 소이치 이야기는 지금도 비정기적으로 그리고 있으며, 현재는 토미에 속편을 그리는 중이라고 덧붙였다.
차기작으로는 ‘모비 딕’이라는 소설을 원작으로 호러 버전을 만들고 있다고 언급했다. 내년 상반기 공개될 예정이다.
이토 작가는 이날 애독자 100명과 함께 하는 팬 미팅과 라이브드로잉 쇼도 진행했다.
라이브드로잉 쇼에서는 약 10분에 걸쳐 자신의 만화에 자주 등장하는 여자 캐릭터인 토미에를 그렸다.
토미에 특유의 눈물점과 촘촘한 속눈썹, 치맛주름과 머리카락까지 모두 생생하게 구현했다.
한국에서 처음 열린 팬 미팅은 티켓 판매 17초만에 전석 매진됐고, 이날도 현장에서 팬들의 열렬한 호응이 이어졌다.
이토 작가가 한국을 찾은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1999년 부천판타스틱영화제에서 영화 ‘토미에’ 상영을 계기로 처음 찾았고, 2014년에는 서울국제만화애니메이션 페스티벌(SICAF)에 참석했다.
10년 만에 다시 한국을 찾게 된 것은 작가의 지적재산(IP)을 활용한 몰입형 체험 전시 ‘이토 준지 호러하우스’가 한국에서 크게 흥행했기 때문이다.
지난 6월 시작된 이 전시에는 약 9만명의 관객이 방문했으며, 전시 마감일도 9월 8일에서 11월 3일로 연장됐다. 12월에는 부산에서도 전시를 열 예정이다.
heev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