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연설서 이례적 강한 어조로 대책 요구…교황 “단호히 대응중”
(브뤼셀=연합뉴스) 정빛나 특파원 = 알렉산더르 더크로 벨기에 총리가 27일(현지시간) 프란치스코 교황을 앞에 두고 가톨릭 교회의 성적 학대와 강제입양 피해에 대한 교계의 대책이 부족하다고 비판했다.
더크로 총리는 이날 벨기에 브뤼셀 라켄궁에서 열린 교황 방문을 환영하는 행사에서 “수많은 성적 학대와 강제 입양 사례로 (가톨릭에 대한) 신뢰가 크게 훼손됐다”고 연설했다.
특히 “당신(교황청)은 정의로운 접근 방식을 약속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면서 “말로만으로는 불충분하다. 구체적 조처가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이는 도덕적 의무일 뿐만 아니라 (가톨릭 교회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단계”라고 강조했다.
공개석상에서 ‘주빈’을 향해 불만이나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것이 외교상 관례이고 게다가 상대가 교황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더크로 총리의 발언은 이례적으로 강하고 직접적인 비판이었다.
필립 벨기에 국왕도 교황이 성적학대 등 병폐 해결을 위한 대응에 나섰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계속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대해 교황은 답사에서 “교회는 부끄러워하고 용서를 구해야 하며 이 문제가 해결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가능한 모든 일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성직자에 의한 학대 피해를 언급하면서 교회가 예방 프로그램 시행, 피해자 목소리 청취, 치유 지원 등 ‘확고하고 단호한 대응’을 하고 있다고 답했다.
교황은 전날 룩셈부르크를 당일치기로 방문한 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가톨릭대학인 루뱅대 설립 6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벨기에를 찾았다.
교황이 이번 방문을 계기로 성직자들에게 성적학대를 받은 15명의 피해자를 비공개로 만난다는 일정이 알려지면서 교황의 메시지와 회동 결과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
피해자들은 교황을 만나 트라우마 치료를 위한 보상 프로그램 등 요구사항을 담은 서한을 직접 전달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여러 세대에 걸쳐 교회 내 성적 학대 문제와 강제입양, 조직적 은폐 의혹이 불거지면서 한때 막강했던 영향력이 쇠퇴한 벨기에 가톨릭 교회의 현주소를 보여준다고 AP 통신은 해설했다.
벨기에에서는 2010년 당시 이 나라 최장수 주교였던 방헬루웨가 13년간 미성년인 친조카를 성적으로 학대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그는 이듬해 또 다른 조카도 학대한 사실을 인정하고 사임했다. 그는 공소시효 만료를 이유로 기소되진 않았다.
이후 2013년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3월에야 방헬루웨 전 주교를 파문했다.
교회 보고서에 따르면 벨기에에서는 2012년 이후 가톨릭교회와 관련해 700건 이상의 불만과 학대 신고도 접수됐다.
더크로 총리가 거론한 강제 입양 피해도 아직 해결되지 않은 가톨릭 교회의 과오로 꼽힌다.
벨기에 교회는 1945년부터 1980년대까지 영아가 ‘사생아 오명’을 쓰지 않도록 한다는 명분으로 미혼모에게 자녀 포기를 강요한 뒤 가톨릭 가정으로 입양을 주도했다. 강제 입양된 어린이는 3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벨기에에 사흘간 머무는 교황은 오는 29일 야외 미사를 끝으로 순방 일정을 마무리하고 귀국한다.
로이터는 당초 야외 미사에서 쓰려던 성가 한 곡의 작곡가가 과거 성적 학대 혐의를 받은 신부로 드러나는 바람에 막판 교체되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 신부는 이달 사망했으며 2002년 성적 학대 피해자와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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