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 10편 수록…명랑한 지성으로 빛나는 글들
(서울=연합뉴스) 김용래 기자 = “문학비평가는 자신의 방식으로 작가를 두 번 살게 하는 자다.”
페미니즘을 바탕으로 한 선명한 논리로 활발히 현장 비평을 했던 문학평론가 고(故) 김미현 전 이화여대 교수가 2009년 팔봉비평문학상 수상소감에서 한 말이다. 고인의 제자들이 모여 김미현을 대표하는 단 한 구절로 뽑은 문장이기도 하다.
김미현 평론가의 1주기를 맞아 고인의 비평 10편을 추린 선집 ‘더 나은 실패’가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한국여성소설과 페미니즘’, ‘판도라 상자 속의 문학’, ‘여성문학을 넘어서’, ‘젠더 프리즘’, ‘그림자의 빛’ 등의 저서에서 뽑은 고인의 대표작들을 제자인 강지희 한신대 교수가 엮었다. 한국여성문학사의 축약본이라 할 수 있는 ‘이브, 잔치는 끝났다’에서부터 1990년대 문학에 대한 개성 넘치는 진단인 ‘섹스와의 섹스, 슬픈 누드’, ‘불한당들의 문학사’ 등 10편을 수록했다.
김미현은 한국 문단에서 가장 활발히 평론을 발표해온 현장 평론가 중 한 명이었다. 199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으로 평론을 시작한 그는 그 자체로 하나의 창작물로 인정받는 평론을 지향하며 현장 평론가로서의 삶을 출발했다.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담론과 신세대 문학에서 출발해 2020년대 포스트휴머니즘 담론과 SF 소설에 이르기까지 그의 손이 닿지 않은 문학이 없었다.
선명하고도 명쾌한 논리, 독특한 스타카토식 문체와 활기 넘치는 비유, 정합성이 도드라지는 그의 평론은 30년 가까이 많은 문학 독자에게 사랑받았다.
선집을 엮은 강지희 교수는 “선생님은 많이 아프셨을 때에도 힘들다는 내색 대신 농담을 던지는 사람이었다”면서 “그 호방한 품성이 어디 가는 게 아니라서, 선생님의 평론 곳곳은 명랑한 지성으로 빛난다”고 썼다.
선집에서는 여성문학 이론과 분석에 누구보다 깊이 발을 들여놓았지만 특정한 틀에 갇히지 않고자 했던 고인의 냉철하게 지적이면서 뜨겁게 감성적인 면모를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다.
수록된 비평들을 천천히 읽다 보면 이렇게 문학을 사랑하고 재능과 끼가 넘쳤던 평론가가 60세도 채 되기 전에 병환으로 세상을 떴다는 사실이 새삼 안타깝게 느껴진다.
선집 제목 ‘더 나은 실패’는 고인이 2020년 김환태평론문학상 수상소감에서 한 말에 나오는 구절이다.
“문학에서 성공은 무의미합니다. 그렇다고 실패만을 반복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사뮈엘 베케트의 ‘다시 시도하기, 다시 실패하기, 다시 더 잘 실패하기’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더 나은 실패’는 문학에서 엄청나게 위로가 되는 명제입니다.”
38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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