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친구와 동거하는 대학생 역…”기분 좋게 극장 나올 것”
“나도 20대 때 시행착오 겪어…사람 사는 것 다 똑같아요”
(서울=연합뉴스) 오보람 기자 = 다음 달 1일 개봉하는 이언희 감독의 영화 ‘대도시의 사랑법’ 주인공 재희(김고은 분)는 할 말을 다 하고 사는 자유로운 영혼이지만, 남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사회에서 배제되는 아웃사이더다.
어릴 적엔 왕따당하고 유학 후 대학에 와서는 동기들의 뒷담화에 오르내린다.
이런 그가 또 다른 아웃사이더 흥수(노상현)와 둘도 없는 친구 사이가 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 모른다. 흥수는 성소수자 혐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정체성을 숨기고 사는 벽장 속 게이다.
박상영 작가가 쓴 동명 소설집에 실린 ‘재희’를 원작으로 한 ‘대도시의 사랑법’은 대학에서 만난 재희와 흥수가 13년간 동거하며 서로의 결핍을 채워주고 차츰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흥수의 시점으로 재희를 관찰한 원작과는 달리 영화에선 흥수와 재희 두 사람이 함께 극을 이끄는 만큼, 재희의 숨겨진 서사와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처음 시나리오를 읽었을 땐 재희를 보면서 ‘얘 진짜 왜 이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재희를 잘 몰라서 오해하고 낙인찍는 주변 사람들처럼요. 그래서 관객은 재희를 오해하지 않도록 이 캐릭터를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재희가 왜 그런 행동을 하는지 그 이면을 알아주셨으면 했어요.”
3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고은은 재희를 연기하던 당시를 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김고은이 바라본 재희는 ‘사랑이 고픈 사람’이다. 자신에게 무관심한 부모님, 따돌림을 당한 학창 시절의 아픔을 미처 치유하지 못한 상태에서 성인이 돼 어릴 적 받지 못한 사랑을 계속해서 갈구하는 캐릭터다.
하지만 주변인들은 재희를 ‘헤픈 여자’라고 멋대로 결론 내린다. 재희가 서툰 방식으로 이에 대응하는 바람에 그에게 붙은 꼬리표는 졸업 때까지 떨어지지 않는다.
“이 영화는 ‘다름’에 대한 존중을 이야기하는 작품이에요. 세상에는 너무나 다양한 사람과 삶의 방식이 있지만, 늘 존중받지는 못하잖아요. 그랬을 때 나의 다름을 어떻게 올바르게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해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해요. ‘대도시의 사랑법’에는 재희와 흥수가 그렇게 되기까지의 성장 과정이 담겼죠.”
김고은 역시 20대 땐 왜 사람들이 다 똑같기를 바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한다. 점차 나이가 들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중요한 건 자신의 다름을 표현하는 방법이라는 걸 깨달았다.
“조금만 다르게 행동하면 사람들은 그게 아주 잘못된 것처럼 받아들이고, 별나다고 생각하고…그게 되게 억울했어요. 저도 재희처럼 나름대로 시행착오와 충돌을 겪었죠. 그러다가 진짜 어른은 나의 개성을 버리지 않고서 잘 살아 나가는 방법을 찾아나가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김고은은 극 중 재희처럼 1991년생이다. 재희를 연기하는 동안 자연스레 자신의 대학생 시절을 돌아보게 됐다.
그는 “재희처럼 저도 혼자서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치이곤 했다”면서도 “재희만큼 놀지는 못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대학 때 재희 같은 아이를 실제로 봤다면 ‘재밌는 친구네’라고 생각만 하고 먼저 다가가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관객들 역시 ‘대도시의 사랑법’을 보다 보면 각자의 과거를 떠올리게 될 듯하다. 성별과 성정체성과 상관없이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재희와 흥수의 모습은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한편, 이들의 사실적인 연기 때문에 곳곳에서 웃음도 터진다.
김고은은 “관객분들이 ‘사람 사는 거 다 똑같구나,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구나’하고 생각하고 극장을 나서면 좋겠다”면서 “우리 모두 실수도 하고 지우고 싶은 기억도 있으니까 다 괜찮다고 말하는 영화”라고 강조했다.
“유쾌하고 웃음도 있어요. 근래에 이렇게 기분 좋게 극장을 나올 수 있는 영화가 잘 없었던 것 같아요. ‘대도시의 사랑법’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기분이 좋아지고, 어떤 부분에선 울컥하는 그런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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